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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역학과 과학적 합리성

시론

얼마 전 “혐오, 차별, 가난은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서울대학교 인권포럼에서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말하는 한국사회 건강불평등’ 강연이 있다는 안내메일을 받았다. 안내문에는 참석자 중 네 명에게 김승섭 교수가 쓴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선물한다는 말도 있었다. 솔깃했다. 이미 신문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소식을 접해서, 책 제목과 ‘사회역학’이라는 용어가 머리에 박혀 있던 차였다. 그러나 다른 일정 때문에 포럼에 참석할 수는 없어, 그냥 책을 사서 읽기로 했다.

우리는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으로 먼저 의료기술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한 해법이 나올 수 없다고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연구하는 김승섭 교수는 말한다.

지난 100년간 의료기술의 발전이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기술의 발전만으로는 충분한 해법이 나올 수 없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며, ‘이 주제에 대한 고민은 오래되었지만, 사회역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잡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말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김 교수가 첫 번째로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김승섭 교수는 지난 몇 년간 사회적 상처(쌍용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원진레이온과 제일화학; 고용불안과 ‘저성과자 해고’; 전공의 근무환경;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실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성소수자 건강의 관계; 우리 사회 인종차별; 사회적 관계망과 건강;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에 대한 논문을 읽고, 이 사회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온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부족함까지도 나누며 함께 답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여겼다고 했다. 책은 단숨에 읽었다. 김 교수가 원했던 대로, ‘함께’ 답을 찾는 마음으로.

물론 책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시론의 취지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책의 내용을 빌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김승섭 교수가 과학인들이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과학적 합리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스스로에게 ‘인구집단의 건강을 연구하는 역학자인 내게 과학적 합리성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본인에게는 과학적 합리성을 말할 때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데이터에 기초한 사고, 두 번째는 지식의 생산 과정에 대한 의심, 세 번째는 근거의 불충분함이 변명이 되는 것에 대한 경계이다.

김 교수는 ‘과학자가 연구를 하고 교육을 한다는 것은 합리성의 힘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지금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좌절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나은 길로 가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 어떤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것인가’, 그리고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정당했는가에 대한 논의’가 오랫 동안 ‘실종’되어 온 사회에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김 교수가 지금까지 충족시키려고 노력해 온,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과학적 합리성의 세 가지 요소는 필자에게는 실로 절실한 것이다. 문제를 입에 올리기는 쉽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과학적 합리성의 세 가지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김 교수는 어떤 보건의료학생 모임의 소식지에 기고했던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라는 제목의 짧은 글로 책을 마감했다. 이 기고문에서 김 교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 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 싫고, ‘함께 아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간직할 수 있기를 또 길러나갈 수 있기를, 그것이 가능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고 했다. 이것이 김승섭 교수가 행동하는 사회역학자가 되게 만든 근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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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