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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이 제일 두려운가요?

시론

자랑스럽게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여자양궁은 늘 단연 압권이다. 그래서인지 전하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관객의 소란스런 야유와 레이저방해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텐! 텐! 텐!’을 쏘아내던 우리 여자양궁대표팀의 한 선수가, 완승 후 현장인터뷰에서 흥분한 리포터가 던진 “경기하기 전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차분한 대답은 경기내용보다 더 압권이었다. 그 대답인 즉, “제 자신이 제일 무섭습니다, 저를 완전히 망가트릴 수 있거든요….”

2016년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우승자와의 최고의 명승부로 골프가 ‘정신적 鬪技종목’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미국의 탑클래스 PGA프로골퍼도 비슷한 인터뷰 어록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어떤 기량을 더 보완해야한다고 생각하나요?”라며 ‘페어웨이를 유지하는 티샷이죠, short game기량입니다, 보셨다시피 퍼팅정확도지요’ 등의 대답을 기대했을 듯한 리포터의 물음에 그의 의외의 대답인 즉, “저는…방금 前홀의 실수를 빨리 잊어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낍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일 년도 채 안 되는 기간동안 20명을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2008년 미국의 ‘라이프’지에 의해 20세기를 대표하는 30인의 연쇄살인마중 한 사람으로 기록된 범죄자가 있었다. 한 범죄심리연구가에게 그가 털어놓은 고백의 기록에서도 주목할 부분이 있다. “제가 만행을 저지르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아세요? 머리카락이 쭈뼛이 섰을 정도로 놀랐던 순간은...(내용의 부적절함으로 중략)... 그런 순간들이 아니고, 남이 들으면 오히려 이해 안 가는 일이지만, 그건 한 범행 후 사체를 훼손하는 와중에 아들 녀석에게 전화가 온 순간이었어요. 당황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감기 아직 안 나았어, 아빠?” 하며 물어보는 말이 “아빠, 난 다 알고 있어. 그러지 마!” 그러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 했었어요….”

위의 얘기들이 들려주듯, 한 주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위협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의 어떤 작동이다. 그것이 역경이든 순경이든, 선행이든 악행이든, 주변의 어느 조건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현 상황의 주체가 가지는 내면의 시각이요 자세인 것이다. 양궁선수가 응시하는 과녁을 향한 시선 위에 어른거리는 야유와 번쩍이는 레이저에 쉽사리 선수 스스로 평정을 잃거나, 지금 눈앞의 버디찬스의 퍼팅라인위로 前홀의 쓰리퍼트장면을 스스로 겹쳐 떠올린다면 당연히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이러한 내면의 적, 다시 말해 주체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이 만드는 ego의 흐름이 특정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에 대해, 라이언 홀리데이는 ‘에고라는 적, Ego is the Enemy(2017,흐름출판)’에서 자세히 파헤치고 서술한다. 그는 ‘지금 현대사회를 사는 개인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소셜미디어에 적극적이고, SNS상에서 자기의 일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드러내고자 하는 말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말들 뒤에는 <나도 현실과 싸우고 있고, 지금 너무 힘들어. 나도 모르겠다>와 같은 속내를 숨기고 있는데, 이는 내 안이 아닌 내 밖에서 위안을 구하려하는 시도로, 자기가 실제로 노력하고 성취한 것보다 더 많은 관심과 신뢰를 받으려고 하는 측면이다’라며 우리가 존중하던 ego를 다소 섭섭하게 묘사하며, 개인의 미래는 물론 주변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비대한 자아를 가진 현대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작은 단위지만 우리들의 모습에 代入하여 생각해본다. 우리 자신 하나하나가 21세기 대한민국 치과의사로 적절한 ego를 가지고 있는 건지. 그래서 우리가 이룬 공동체도 그러한 ego로 제대로 작동하는지. 나아가 그러한 집단 ego의 작동으로 우리가 키워온 내부의 모순들을 능히 계속 견디고 풀어나가며, 좀 더 나은 구조와 기능을 갖춘 유기체로 존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물론이고 우리들이 이룬 치과계라는 공동체가 집단의식을 가진 하나의 주체이고 어떤 미션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공동체 내면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예의주시하고, 애정으로 비판하며, 마주하고 고민하고, 뭉쳐서 해결해야 한다.

양궁선수의 말대로 우리에게 제일 두려운 건 우리 자신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용호 서울 중구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