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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천장’ 뚫고 우뚝 선 그들

▶신년특집
미국 치대 한국인 교수 증가세
교정, 1.5~2세대, 여성 주류로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계의 고위직 상승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 일명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을 뚫고 미국의 유수 치대에 교수로 임용돼 세계무대를 누비는 한인 치과의사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과거 1세대 미국 치대 한인 교수들이 한국에서 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수련과정을 거쳐 교수로 임용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1.5~2세대의 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다.

1.5세대는 한국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 재학 중 혹은 졸업 후 미국으로 조기 유학한 사례며, 2세대는 이민 온 부모로부터 현지에서 태어나 미국의 교육과정을 받고 성장한 사례가 전형적이다.

특히 교정 강국으로서 한국 치과계의 위상을 반영하듯 교정과 교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한인 교수 교정, 치주 분야 두각

국내에 잘 알려진 1세대 미국 치대 한인 교수로는 묘교정의 창시자로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고 김영호 교수(서울치대), UCLA치대 학장을 두 번이나 역임한 박노희 교수(서울치대)가 손꼽힌다. 

박 교수는 지난 98년 미국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UCLA대학에서 동양인 최초로 학장에 당선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밖에도 인디아나치대 박기철 교수(서울치대), 베일러치대 조준영 교수(서울치대)가 있다. 또 국내를 넘나들며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로는 뉴욕치대 조상춘 교수(경북치대), 애리조나치대 박재현 교수(경희치대) 등이 있다.

이들의 계보를 따진다면 1세대 중반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조상춘 교수는(경북치대)는 경북치대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무대를 오가며 최근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임플란트계 거장으로 불리는 타나우 교수와 공동연구 및 임플란트 강연을 진행하는 등 아시아계 임플란트 학자로서 명성이 높다.

박재현 교수는 현재 미국교정학계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거물급 인사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치과교정과전문의(American Board of Orthodontics, 이하 ABO) Pacific Coast Society of Orthodontists(PCSO) 회장을 역임 중이며, 2024년에는 전 미주 미국 치과교정 전문의 회장으로 취임이 내정됐다. 

# 1.5~2세대 한인 교수 증가세 두드러져

국내에 잘 알려진 1.5세대로는 하버드치대 김민준 교수가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조기 유학한 경우다. 앤하버-미시간대학에서 생물학(B.S)을 전공한 그는 메릴랜드 치대를 거쳐 하버드 치대에서 레지던트와 석·박사를 마치고 서른다섯에 하버드대 치주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김철위 서울대 명예교수의 장남이기도 하다.

현재 하버드치대에는 김 교수 외에도 1.5~2세대 한인 교수가 두 세명 정도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CLA 치대에도 열 다섯살때 이민을 간 홍여민 교수(크리스틴 홍)외에 1.5~2세대 교수가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으나 현지에서 활동 중인 한인 교수들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상당수의 한인 1.5~2세대들이 미국 치대에 교수로 임용돼 활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민 온 부모로부터 현지에서 태어나 미국의 교육과정을 통해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성장한 만큼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편이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 치과계와의 교감이 크지 않은 편이다.

# 교정과 한인 여성 교수 임용 눈에 띄게 늘어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변화라면 미국 치대에 교수로 임용된 한인 여성 치과의사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주로 교정과에 포진됐다.

퍼시픽치대(UOP) 오희수 교수(전남치대), UCLA치대 곽진희 교수(연세치대), 유펜치대 전혜란 교수(부산치대), 로즈만치대 안지현 교수(경북치대), 스탠포드대 추혜란 교수(서울치대)를 비롯해 현지에서 대학을 나온 1.5세대인 UCLA치대 홍여민 교수와 Tufts치대 한언애 교수 등이 교정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밖에 알라바마치대 소아치과 천경아 교수(경희치대) 등 다수의 여성 교수가 미국치대에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아래 관련인터뷰>. 

미국 치대 한인 교수 현황=========================

 *표는 여성/ 한국치대를 졸업한 경우 괄호 안에 명기

▣ 치주
 -조준영 교수 베일러치대(서울치대)
 -오태주 교수 미시간치대(서울치대)
 -강태헌 교수 노바치대(서울치대)
 <1.5세대>
 -김민준 교수 하버드치대

▣ 교정
 -배응권 교수 메릴랜드치대(연세치대)
 -박재현 교수 애리조나치대(경희치대)
 -김기범 교수 세인트루이스치대(단국치대)
 -오희수 교수 퍼시픽치대(UOP)(전남치대)*
 -곽진희 교수 UCLA치대(연세치대)*
 -전혜란 교수 유펜치대(부산치대)*
 -안지현 교수 로즈만치대(경북치대)*
 -추혜란 교수 스탠포드대(서울치대)*
 <1.5세대>
 -Won Moon 교수 UCLA치대
 -박주록 교수 퍼시픽치대
 -홍여민(크리스틴 홍) 교수 UCLA치대*
 -한언애 교수 Tufts치대*

▣ 임플란트
 -조상춘 교수 뉴욕치대(경북치대)

▣ 보철과
 -이동호 교수 미시간치대(서울치대)

 -장명우 교수 유펜치대(서울치대)
 -오원석 교수 미시간치대(전북치대)
 -김태형 교수 USC치대(서울치대)
 -조석환 조교수 베일러치대(서울치대)

▣ 소아치과
 -천경아 교수 알라바마치대(경희치대)*

▣ 생물공학
 -정만교 교수 메릴랜드치대(경희치대)


관련 인터뷰============================================

미국 유수 치대의 교수로 임용돼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1~1.5세대 한인 교수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대나무 천장’을 뚫기까지 그들이 겪어온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 또한 세계 속 한국 치과계의 위상 제고를 위한 방안과 해외 진출을 꿈꾸는 치과의사와 치대생에게 도움이 될 조언을 구했다. 대나무 천장 + 유리 천장까지 ‘이중의 벽’을 뛰어 넘어 미국 치의학계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교수의 조언도 함께 담았다<편집자 주>.

1세대  | 애리조나치대 박재현 교수 ======================================

“연구 성과는 기본 학벌보다 인맥관리 중요”

애리조나치대 박재현 교수는 경희치대 졸업 후 10년 간 개업하다 마흔이 다된 나이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해 2007년 임용됐다.

현재 미국치과교정과전문의(American Board of Orthodontics, 이하 ABO) Pacific Coast Society of Orthodontists(PCSO)의 회장을 맡고 있다. 2024년에는 전 미주 미국 치과교정 전문의 회장에 취임 예정이다. 미국 교정계의 거물급 인사로 성장한 그는 한국 치과계가 주목하는 인물이다.

▲어떻게 미국치대 교수가 됐나?

경희치대 졸업 후 한국에서 10여 년 동안 개업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마흔이 다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6년 뉴욕치대 수련의 시절 전 미주 리서치 대회에 수련의 대표로 참석해 1등을 차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때 눈여겨보신 교수님의 추천으로 애리조나치대 교수직을 제의받았고 이듬해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애리조나치대는 신설된 지 4년 정도 된 신생대학이었는데 내가 부임한 후 교정과가 신설돼 초대 교정과장을 맡았다.

▲한국인 혹은 동양인이어서 힘들었던 점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1세대들은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과제로 안는다. 여전히 백인 위주의 사회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치과대학에 동남아 사람들이 공부를 하러 왔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까. 그들에게 주어지는 시선이 미국 내 한인으로서 내가 겪은 바로 그것이었다. 특히 내가 있는 지역의 경우는 동양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편견의 시선이 더욱 부담스러웠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운이 좋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않았던 것이 크다. 다만, 기회를 잡기 위해선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했다. 미국 공직사회에서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연구는 물론 인맥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8년부터 풀타임 교수로 일하면서 현재까지 170여 편의 연구 출판물을 냈다. 최근 10년 사이 교정학계에서 가장 많은 편수인 것으로 안다. 연구 성과 이상으로 특별히 인간관계, 인맥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타인에 대한 험담을 자제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료, 선·후배들에게는 늘 먼저 다가서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연구 실적이 좋아도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한다면 미국 학계에서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오를 수가 없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많이 봐 왔다. 미국에서는 학벌 보다 선후배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기에 관계를 잘 맺어두면 결정적인 순간 지지를 얻어내기가 유리하다.

▲한국 치과계의 위상을 평가한다면, 덧붙여 발전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사실 80~90년대만 해도 한국 치과계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낮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임플란트, 특히 교정학계만 놓고 본다면 미니스크류(TADs)가 한국에서 개발, 보급되면서 세계 각국의 관심이 쏟아졌다. 현재는 CBCT와 디지털 교정으로 세계 치과 교정학계를 한국 치과계가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인기 있는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기초학에서의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연구윤리(IRB 및 연구동의서 확보 등의 문제)로 인해 신기술 도입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고 이밖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지만 세계 각국에서 유입되는 우수한 교수진과 기초 학문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강세 등에 힘입어 세계 치과 교정학계를 선도 하고 있다.

▲한국 치과계 후배들에게 이것만은 꼭!

한국 치과계는 우수한 인력풀들이 많다. 하지만 졸업 후 대부분 개원에만 몰리다 보니 경쟁이 심각한 상황이다. 자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 치대 졸업 후 한국에서 10년 간 개원을 하고 있었을 때에는 나 또한 이러한 세계에 무지했다.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졌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더욱 넓어졌다.

물론 미국 등 해외로 진출하더라도 성공을 반드시 장담할 수는 없다. 생각보다 많은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넓은 무대에서의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미국은 한국 치과계와 비교해 더욱 다양한 선택이 주어지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기회가 돼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면 개원을 통해 환자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미국 치대에 근무하면서 논문을 출판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미국치과의사협회나 치과전문의학회에 가입해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들에 더욱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대한민국 치과계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1.5 세대  | 하버드치대 김민준 교수 ==============================

“한국 치과 테크닉 세계 최고
 근거중심 연구풍토는 아쉬워”

하버드치대 김민준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간 케이스다. 앤하버-미시간대학에서 생물학(B.S)을 전공한 그는 메릴랜드치대 졸업 후, 하버드치대에서 레지던트와 석·박사를 마치고 서른 다섯에 하버드치대 치주과 조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하버드치대 평생교육원 디렉터를 맡아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를 누비며 하버드치대의 우수한 교육프로그램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어떻게 미국치대 교수가 됐나? 한국인 혹은 동양인이어서 어려웠던 점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3학년이던 누나와 함께 조기 유학을 왔다. 치대 교수가 된 것은 아버지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서울치대에 교수(김철위 명예교수)로 계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버지 연구실을 자주 드나들며 연구하시는 모습을 뵈어 왔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미국에 와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치대를 선택했고 처음부터 교직에 마음을 두고 공부에 전념했다. 

미국에서는 멘토가 무척 중요한데, 사실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좋은 교수님들을 만났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교직에 남고 싶다는 나의 의사를 알고 레지던트 시절부터 좋은 연구논문을 쓸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특별히 동양인이기 때문에 느꼈던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슬럼프나 고비는 없었나? 어떻게 극복했나?

학교에 근무한지 12년 정도가 됐다. 학생관리, 개인 연구, 진료까지 주말도 없이 매우 바쁘게 지내다 보니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그러면서 고비도 찾아 왔다. 어떤 상황에서든 다 비슷하겠지만 내가 왜 일을 하는지 목적을 명확히 하면서 슬럼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치과에서 환자만 돌보고 학생들만 가르치다 보면 좁은 세계에 매몰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회봉사 활동을 했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치과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들을 통해 얻은 것을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최근 미국 치대 내 한인 교수가 많이 늘었다는데.

정확한 수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어린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오거나 이민을 온 1.5세대와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인 2세대 치과의사들이 많이 증가한 것으로 안다. 하버드치대만 해도 나를 포함해 한국인이 3~4명에 이른다. 우리 대학의 경우는 한국인끼리 사이가 매우 돈독한 편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한국에서 치대를 나온 1세대들에 비해 아무래도 유대감이 덜할 수밖에 없다. 특히 2세대의 경우 한국 치과계와 교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 치과계의 위상을 평가한다면, 덧붙여 발전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삼성이나 엘지의 위상만큼이나 한국의 치과와 성형 분야 의료기술은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인식된다. 특히 한국 임플란트와 교정분야의 우수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다만 테크닉 측면에  치우치다 보니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근거중심의 연구풍토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치과계가 더욱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기초연구분야가 더 강화돼야 한다.

더불어 대학의 교육 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학교 교육 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졸업 때까지 크라운 100개를 무조건적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보다는 학생이 크라운 100개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방식으로 교육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 치과계 선,후배들에게 이것만은 꼭!

여건이 허락한다면 글로벌한 시각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가졌으면 한다. 이민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현지에서 적어도 2~3년 살면서 공부해 보는 경험은 전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최종 선택지가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과거에 비해 미국치대 입학이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치대를 졸업한 경우 미국에 와서 대학원 3~4년을 다니고 현지 면허를 취득해 개원하기 위해서는 2년 과정의 치대에 다시 입학해야 하는데 시간적, 경제적으로 그에 따른 희생이 너무 크다. 치과기술이 발달한 폴란드나 유럽, 일본 등의 연구재단 등을 알아봐 도전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여 전공과별 모임 등 국내외 교수님들끼리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한국 치과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여성| UCLA 치대 곽진희 교수 =================================

“출산휴가·양육 눈치 안보여
 실적 통한 정당한 평가 성취감 커”

UCLA치대 곽진희 교수는 연세치대 졸업 후 UCLA치대에서 교정수련을 거쳐 2013년 조교수로 임용됐다. 지난해 7월에는 부교수로 승진했다.

현재 UCLA치대 클리닉 디렉터를 맞아 교정과 클리닉 운영과 수련의 임상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어떻게 미국에서 치대교수가 됐나?

해외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두 살 무렵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랐다. 고3 때 한국에 들어와 재수를 거쳐 연세치대에 입학했다. 치대 재학 시절 1차, 2차 미국치과의사시험을 봤다. 이후 UCLA 교정과에서 수련을 거쳐 교직의 길을 걷게 됐다. 애초 교육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꿈을 실현하게 됐다.

사실상 교직에 몸담게 된 것은 연세치대 본과 시절 전국치과대학학생학술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것이 바탕이 됐다. 그 상으로 미국치과의사협회의 초청을 받아 발표 기회를 가졌고 이후 Surgical and Radiology Anatomy,  AJO-DO 영어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등의 이력이 UCLA 교정과 수련의 지원에 큰 도움이 됐다. 수련 과정에서 열정과 능력을 좋게 봐주는 여러 분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더욱 본격적으로 교직에 남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수련기간 중 7개의 논문을 발표했고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또한 수련 과정에서 처음으로 여성이자 외국인 수련의로서 chief resident를 맡아 행정적인 일을 익히며 나름대로 철저하게 교직에 남기위해 준비를 했다.

▲동양인 또는 여성이란 편견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동양인, 그것도 여성이라는 사실이 핸디캡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명확한 사실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보다는 훨씬 더 자유롭고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된 신진학자로서 교단에 선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내가 겪은 미국은 인종이나 성별에 대한 편견 없이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게 주어지는 곳이었다.

단적으로 한국은 교수라고 해도 출산휴가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 양육 등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것들이 당연한 권리로 인식된다.

학교 내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내느냐 보다는 연구비 확보능력과 연구실적을 통해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성취감이 크다.

▲한국 치과계의 위상을 평가한다면, 덧붙여, 발전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한국 치과의 임상 능력이야말로 높이 평가된다. 특히 교정과를 예로 든다면 미니스크류(TADS), 선수술 등이 한국에서 개발 및 개선돼 세계로 보급되면서 한국 치과계의 위상을 드높였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기초과학 분야나 치과 이외 인근학과들과 연구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면 좋을 것 같다. 임상과학이나 치과 분야에 제한된 연구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향후 기초 및 임상연구 또는 신기술 개발에 치과 내의 다른 과나 치과 외 타과와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과의 협동연구실을 예로 든다면 치과, 의과 그리고 생명공학과가 financial, authorship 또는 ownership의 갈등 없이 모든 기초, 임상 또는 기술개발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고, 이로 인해 현재 이천만 달러 이상의 국가 지원 연구비를 확보하고 있다. 하나의 과에서 하는 연구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규모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국가 연구비 지원에 있어서도 여러 분야가 수월하게 협력할 수 있다면 훨씬 깊이 있는 연구를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과 비교하면 국가의 연구비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연구비를 따라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이나 일본 등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한국 치과계 선,후배들에게 이것만은 꼭!

사실상 해외 진출은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 투자를 필요로 하는 중대한 결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열정과 뜻을 가지고 진심으로 임한다면 인종과 상관없이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여러 나라를 경험하고 미국에서도 가장 다문화사회라 할 수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현재 거주하면서 느낀 바는 명확하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이면 다 비슷하고 진실된 열정과 노력이 주변을 감동시킨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물론 기본 능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따라서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최대한 능동적인 자세로 더 많이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교직에 진출하고 싶다면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학교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방향과 목표를 잘 설정해서 충실히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