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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6년 사망한 여러분의 동료입니다

특별기획/치과의사의 죽음, 그리고 삶- 어느 치과의사의 죽음(상)
23년 치과의사 생활 50세 일기로 사망
사망 후 소중한 치과는 헐값에 매매

모든 죽음은 개별적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죽음은 하나의 인생을 종결짓지만, 그걸로 의미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낱낱의 죽음이 모여서 만든 ‘죽음의 덩어리’를 파헤치고 분석하면 거기서 ‘삶’을 길어낼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치과의사 면허자수는 31,050명. 이 중 작고하신 회원의 정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치과의사의 평균수명, 직업적 수명이 얼마인지, 어떤 질환에 주로 걸리는지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반면 일본 치과계나 한국 의학계에서는 선행연구가 진행된 바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작고 회원의 데이터 약 1100여 건을 확보해 ‘치과의사의 죽음’을 파헤치고 분석해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나아가 치과의사로서의 건강한 삶과 그를 위한 환경까지 담론을 넓혀보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나는 1956년도에 태어나 2006년 만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러분의 동료 치과의사입니다.

77학번으로 치과대학에 입학해 1983년 졸업하면서 치과의사 면허증을 취득했으니 23년 동안 치과의사로 김 아무개로 살았습니다. 졸업 후 공중보건의 생활을 거쳐 1987년 서울의 한 건물 2층에 제 이름을 건 치과를 내었습니다. 당시에 내 주위에 치과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참으로 ‘호시절’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그날 예약 환자 생각부터 하고 자기 전에도 그날 있었던 진료를 복기했습니다.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술기가 나왔다고 하면 연수회, 세미나 가리지 않고 공부했고, 임플란트 열풍이 불기 전에 먼저 술기를 습득해서 일대에서 진료 잘하기로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돈도 제법 벌었지요.

그러다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2004년 초쯤이었습니다. 자주 피로감을 느끼는 게 단순히 과로 탓이겠거니 하다가 급격히 몸무게가 빠지고, 잦은 어지럼증이 왔죠. 그러다가 결국 진료실에서 쓰려졌습니다. 의사의 진단은 ‘혈액암’.
(나는 결국 2년의 투병 생활을 하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직원, 동료들을 이승에 남겨두고 홀로 떠나왔습니다.)

# 남은 12년을 이렇게…
투병 중에도 나는 완치에 대한 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나를 도와준 직원이 있고, 나아가 내가 치과의사로서 꿈꾸어왔던 노년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달이라도 치과를 운영해 줄 관리의사 구인광고를 냈지만 마음 같지가 않았습니다. 겨우 모신 관리의사 선생님 또한 3번 정도 바뀌면서는 차라리 치과를 매매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나는 친한 동기에게 치과매도를 부탁해 놓고 투병에만 전념했지만 극복하지 못하고 생을 정리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떠난 후, 남은 가족은 제 동기들과 의논해 헐값에 내 치과를 매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자 동기들과 지인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위로금도 모아서 전달하고, 가끔씩 안부전화도 해왔다고 하지만 내가 떠나고 약 1년 후 부터는 그마저 끊겨 내 가족들은 나 없이 홀로서기를 하고 있겠죠. 23년 간 치과의사의 삶을 채워준 치과와 나의 가족, 동료들….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지금 살아있다면 62세가 되었을 겁니다. 2006년이 아니라 2018년까지 나에게 12년이란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그 12년을 나는 이렇게 보냈을 것 같습니다.

▲평생 볼 환자는 정해져 있으니 절대적인 환자 수에 욕심 내지 않고 자신 있고 스트레스가 적은 진료를 주로 했을 것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해 왔던 야간진료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진료실의 미세먼지, 분진 등 위해요소에 적극적으로 대처했을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가졌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봉사를 했을 것입니다. ▲자연과 가족을 벗 삼아 많은 여행을 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보았을 겁니다.

위 이야기는 2006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혈액암) 판정을 받고, 2년 간 투병 끝에 사망한 모 원장의 생전 이야기와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본지가 입수한 통계에 따르면 이른바 치과의사의 ‘만년’으로 분류될 수 있는 73년에서부터 93년의 졸업자 중 작고회원의 평균 사망연령은 50.2세로 나타났으며, 이 중 혈액암 사망은 유의미하게 다수 포착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