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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예로 이룬 터를 다녀와서-서울치대 28회 동기 여행


대학 동기들과 안동을 다녀왔다. 안동은 자고로 예의 터전으로 불리며, 성리학의 본향인 도산서원이 있는 곳이다. 지난 4월 21일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 여정이었다. 매년 이어지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28기 연례행사로, 입학으로 치면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행사였다.
 
첫날 일정은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그리고 봉정사였고, 밤 일정으로 원이 이야기로 유명한 월영교의 애절한 다리 밟기를 했다. 둘째 날은 박물관과 도산서원을 들렸다. 짧은 시간동안 알찬 일정이었다. 겉으로는 역사 속으로 들어간 과거 이야기였고, 속으로는 한국 사람들 가슴에서 흐르는 정신의 본질의 원천을 찾는 일이었다. 동시에 한국정신문화의 본류의 강을 이루는 낙동강 상류에 남은 선조들의 흔적을 더듬은 일이었다. 안동은 분명히 영남지역의 일부이지만 그 영향은 한국정신사를 포괄하고 있다. 서둘러 말하면 이번 여행으로 통해 지금껏 우리의 유전자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소위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인 원형(archetype)을 보고 왔다.
 
그 고장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로는 헛제사밥과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이다. 역사인 원조 장소다. 특별히 이번에 귀한 일은 오찬과 만찬을 모두 그곳 출신 동기들에게서 풍성한 마음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 탓에 선비와 붕우(朋友)라는 학연의 새로운 의미까지 먹고 왔던 것이다.

안동은 많이 알려진 곳이라서 대부분 많은 양의 지식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탓에서 처음 여행이었지만 현지 실습 같았다. 아는 것을 확인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결과 막연했던 일이 확연함으로 승화되는 시간들이었다.
 
이번에 들렸던 이야기를 여기에 모두 풀어놓은 일은 지면 분량 탓에 벅찬 일이다. 그래서 당시 교육기관인 도산서원을 중심해서 안동여행을 돌아보고자 한다. 왜냐면 일행이 동문수학을 했던 동기들이라서 그곳이 남달리 깊은 의미로 새겨졌기 때문이다.


도산서원은 질그릇이 나온 터에 퇴계가 만든 서원이다.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다. 더 중요한 것은 임금님이 퇴계를 숭앙하여 사후에 현판을 내려주신 소위 사액서원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최초 지방 국립대학교가 된 셈이다. 이곳에 오면 징비록의 서애 류성룡과 일본의 정세파악의 오류보고를 했지만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학봉 김성일을 거론하게 된다. 진주를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와 여헌학파 함께 퇴계학파는 거유(巨儒)의 본토다. 성리학은 조선조 통치철학으로 이들을 영남학파라 불린다.

서원은 과거시험을 통해  한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와 당대 여론을 이끌었던 인물을 수많이 배출하였다. 과거란 국가시험으로 우리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우리들도 의과라는 잡과 과거시험에 합격한 신분이라서 동일한 느낌이 많고 깊었다.
 
퇴계는 동양철학의 대간인 성리학의 봉우리를 만들고 집대성한 분이다. 소위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의 퇴계학파를 이룬 것이다. 불교나 유교는 심지어 서양정신을 이룬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조선 땅에 들어와 문화사적으로 가장 큰 봉우리를 이룬 것은 민족의 우수성이 그런가 보다.

지금도 학파란 이론을 세운 학문의 가계를 말한다. 성리학은 주자학을 기본으로 만든 이론이다. 쉽게 말하면 우주 이론과 인간의 품성을 융복합시킨 학문이다. 퇴계학파는 주리론으로 이이(율곡)의 주기론과 쌍벽을 이루는 특성으로 한다.



사단칠정이 바로 그것을 뜻한다. 그것은 성리학(性理學)의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다. 사단(四端)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선천적이며 도덕적 능력을 말한다. 칠정(七情)은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망(欲)의 일곱 가지 자연적 감정을 가리킨다. 사단이란 인간의 근본 심성이 선하다는 성선설로, 맹자 이론을 계승한 것이다. 반대는 순자의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이다. 물론 칠정은 성악설에 가깝지만 전자는 성품 속에 있는 좋은 면을 개발시키려는 수도사적 삶을 말하는 것이다. 후자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교육을 통해야 선비의 지향점인 군자의 도리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爲)라는 말을 중요시한다. 이런 견해는 정치사상에 도입되어 예송논쟁으로 이어져 정치적 당파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단초가 되었다.

붕당(朋黨)이란 붕과 당의 연합이다. 붕은 동문수학한 제자들 모임이라서 스승이 있어야 하고, 당은 뜻이 같은 사람끼리 뭉친 집단을 말한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가 붕과 당을 이루어  지금의 정당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철학적 이념의 정치적 단합인 것이다.

고래(古來)로 위대한 스승은 직접 저술한 책이 없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제자 플라톤에 의해 만들어지었듯 퇴계의 예학도 조진에 의해 『퇴계상제례답문 退溪喪祭禮答問』이 쓰여져, 그후 대대로 수정 보안하여 이어진 것을 보면, 예수님도 제자들이 그분의 행전을 기록하여 복음서를 만든 것과 동일하다. 이처럼 스승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계승하는 제자도 역시 중요하다. 이번 여행 중 스승님과 후진들의 고마움을 상기시킨 대목이 그런 연유서다.
 
지금은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새로운 사조로 이동하는 변환기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 중 하나는 데리다의 해체주의다. 이것은 전통을 해체하여 권위까지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문학에서 문장의 문법까지 해체하는 아방가르드 작품인 난해시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방금 말한 대로 탈-포스트모더니즘의 이동시기에 있는 우리는 모든 새롭게 도래할 정신사조 앞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서 있다.

모든 사조는 시대적 반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헤겔의 변증론적 역사해석으로 확인되게 된다. 정이 반으로 가서 합을 이루는 역사철학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반동은 우리 민족의 경우는 성리학 특히 퇴계의 예학사상에서 대안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구한 정신사적 흐름으로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동 여행은 그런 면에서 50년 전에 동숭동 지금은 대학로의 캠퍼스에서 만난 붕우들과의 원초로의 회구였으며, 무의식속의 유영(遊泳)이었다. 동문수학의 우정이 언제나 푸르기(상청常靑)를 기리는 마음에 퇴계 선생의 작품으로 글을 마감한다.

靑山은 엇디하야 萬古에 푸루르며
流水는 엇디하야 晝夜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긋지마라 萬古常靑 하리라

정재영 정치과의원 원장,시인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