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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피하면 행복할까?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불의를 저지르는 것과 불의를 당하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이런 물음을 받으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까? 적어도 불의를 당한다는 것은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것인 만큼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나쁘기는 해도 이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일 듯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하고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그는 물론 불의를 당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불가피할 경우에는 불의를 저지르기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는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은 전적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견해에 대해서는 대뜸 반론이 제기됨직하다. 많은 사람이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행복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란 작품의 등장인물인 폴로스는 그런 행복한 사람의 예로 마케도니아의 왕 아르켈라오스를 든다. 이 사람은 많은 사람을 부정의하게 죽였지만 형벌을 받지도 않고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영화를 누려 행복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저지르고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불의를 저지른 자와 부정의한 자는 전적으로 비참하다. 그런데 불의를 저지르고도 형벌을 받지 않는다면 더욱 비참하다. 그러니까 덜 비참하게 되려면 대가를 치르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처벌 받아야 덜 비참하다는 견해는 그다지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을 듯하다. 우리의 현실만보더라도 권력을 남용해 심판을 받는 옛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처벌을 나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피하고자 하지 않는가? 일반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이 불의를 저지른 경우 처벌만은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폴로스도 처벌을 받는 것을 나쁜 것으로 보고, 예를 하나 들고 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참주가 되기 위해 불의를 저지르려다 붙잡혀서 자신의 처자식까지 온갖 고문을 당하게 하고 화형에 처해지는 것보다는, 도망쳐서 참주로서 통치자 노릇을 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며 평생을 보내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이 부당하게 참주가 되려고 음모를 꾸민 것이라면, 그 둘 중 어느 쪽도 더 행복하지는 못할 테지만, 도망쳐서 참주 노릇하는 자가 더 비참하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왜 소크라테스는 불의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아야 덜 비참하다고 보는 것일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의를 저지른 자의 경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정의롭게 응징 받는 것’이다. 즉 그는 정의로운 일을 겪는 것이다. 그런데 정의로운 것은 좋은 것이다. 대가를 치르는 자는 좋은 일을 겪는 것이다. 이 일로 그의 혼은 더 훌륭하게 된다. 결국 대가를 치르는 자는 혼의 나쁜 상태에서 벗어난다. 세 종류의 악, 즉 질병, 불의가 있는데, 이 중 불의와 혼의 나쁜 상태가 가장 큰 악이다. 그러니까 대가를 치르는 자는 가장 큰 악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본다.

더 나아가 그는 행복한 자의 순서를 열거한다. 혼속에 나쁜 상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야말로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나쁜 상태에서 벗어나는 자가 두 번째로 행복하다. 따라서 불의를 지닌 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자는 최악의 삶을 살게 된다. 이 사람은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훈계를 받지도 않고 응징을 당하지도 않고 대가를 치르지도 않는 데 성공하는 자이다. 바로 아르켈라오스나 다른 참주들이 그런 자들이다. 이들이 해낸 성공이란 가장 위중한 질환을 앓는 사람이, 마치 아이처럼 지지거나 자르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두려워하여 치료조차 받지 않는 데 성공하는 것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처벌을 피하는 자들도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다. “그들은 건강한 혼이 아니라 상하고 부정의하고 불경한 혼과 같이 사는 것이 건강하지 않은 몸과 같이 사는 것보다 얼마만큼 더 비참한지를 모르는 것 같다.”(479b-c)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몸의 나쁜 상태인 질병보다 혼의 나쁜 상태인 불의가 얼마나 크게 해로운지 그에게는 너무도 분명하게 의식되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다지 분명하게 의식되지 않는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역임
정암학당 이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