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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강자의 이익인가, 약자의 이익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법은 정의의 척도 역할을 한다. 따라서 법은 불편부당해야 하지만, 법이 과연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왔다는 것은 우리의 법이 약자들의 편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근래에 전직 권력자들이 줄줄이 재판을 받는 것을 보면 법이 강자들의 편만은 아니라는 믿음을 주기도 한다. 물론 법률들 중에는 약자에 더 유리한 것도, 강자에 더 유리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법은 누구의 이익을 반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대로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플라톤의 <국가> 1권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각 정권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피통치자들에게 정의로운 것이라고 공포하고, 이것을 어기는 자는 부정의한 자로 처벌하는 것으로 본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런 정의관에 담긴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의는 남에게 좋은 것, 즉 강자인 통치자에게 이익이 되지만 복종하여 섬기는 자 자신에게는 해로운 것인 반면, 부정의는 이와 반대의 것이다. 그리고 통치를 받는 자들은 강자인 통치자의 이익이 되는 것을 행하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뿐이고 결코 어떤 식으로도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말의 요지는 (1) 정의는 강자인 통치자의 이익이고, (2) 부정의(불의)가 통치를 받는 사람들에게 더 이익이 되고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의 견해를 하나하나 반박한다. 이 글에서는 제한된 지면상 (1)과 관련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정의가 강자인 통치자의 이익이라는 견해를 반박하기 위해서 전문가들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의사는 돈벌이를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인가? 바른 뜻에서 선장(조타수)인 사람은 선원들의  통솔자인가, 아니면 선원인가? 이 물음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본래 의사나 선장은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약자, 즉 그들의 관리를 받는 대상의 이익을 살피고 지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들이나 지식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 약자의 이익을 살피고 지시하는 만큼, 그 기술들을 사용하는 한, 의사나 선장도 약자의 이익을 살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의사나 선장의 경우처럼 참된 통치자도 통치를 받는 자들(약자들)의 이익을 살핀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옳다면 통치자는 법 제정을 통해 강자인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트라시마코스의 견해는 옳다고 볼 수 없게 된다.

트라시마코스는 양치기나 소치기가 양이나 소한테 좋은 것만을 살피고 이를테면 돈벌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또한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살피지 않는 듯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스러워한다. 곧 양치기나 소치기, 의사,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그들이 사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양치기가 양치기인 한에서는 양에게 가장 좋은 것을 염두에 두고, 통치자가 통치자인 한에서는 통치 받는 사람들(약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살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크라테스는 기술들은 각기 다른 성과를 제공하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의술은 건강을, 조타술은 안전을, 건축술은 집을, 그리고 보수 획득술은 보수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건강, 안전, 집 등은 각 기술이 제공하는 특유의 성과들인 반면, 보수는 모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며, 이런 이득은 전문가들이 공통되게 보수 획득술을 추가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얻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 전문가에게 이 이득, 즉 보수 획득이 있게 되는 것은 각자의 전문 기술로 해서는 아니라 보수획득술로 인한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전문가들은 전문가인 한 그들이 돌보는 대상인 약자들의 이익을 살피는 자인 한편, 추가적으로 돈벌이하는 자로서 보수 획득술을 이용해 보수 획득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구분을 통해 참된 의사나 참된 통치자는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나 돌보는 대상에게 좋은 것을 살피는 사람이고, 돈벌이를 하는 것은 의사의 고유한 일이 아니라 부수적인 일임을 분명히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역임
정암학당 이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