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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편의 논어 글쓰기를 마치며

시론

孔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논어 10-3
 논어 마지막 문장이다.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으며,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2016년 10월 17일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시작으로 하루 한편 논어로 생각정리하기를 시작하여 2018년 4월 29일 不知言 無以知人也을 마지막으로 논어 글쓰기를 마쳤다. 560일 동안 논어 498편중 310편의 글쓰기를 하였다.

50여 편의 글이 모아지자 아침에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생겼다. 토, 일은 논어 글쓰기를 하지 않기에 일주일에 5번의 글쓰기를 습관적으로 하였다.

아침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치과에 도착하여 한편의 글을 쓰고, 다음날 쓸 논어 한귀절의 한자를 정리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인터넷에서 다양한 해석들을 뒤졌다. 賢賢易色(현현이색)에 대한 해석은 10가지 이상이나 되었다. 진료를 하며 문장의 한자 하나하나를 하얀 종이가 검게 되도록 쓰고, 한자가 익혀지면 문장을 썼다. 문장에 대해 느낌이 오면 다른 일을 하였다. 습관의 놀라움 . 처음 시작할 때는 논어 글쓰기를 마치는데 5년 계획을 세웠다. 전날 술을 마시면 아침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기에 자주 마시던 술도 조금씩 절주하고, 술자리도 피하게 되었다. 목표가 생기면 자신의 생활을 통제하게 됨을 알았다.

논어 첫문장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習(익힐: 습 羽 (깃:우) + 自 or 白자)에 마음이 꽂혔다. 알에서 막 깨어난 어린 새는 날지 못하면 죽기에 살기 위해 어미 새에게 배운(學) 날개(羽)짓을 연습(習)한다. “나는 어린 새의 심정으로 배우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여 본적이 있는가?”스스로에게 질문하였다. 처음 접한 習자가 나를 600여일 글쓰기 여행을 하게 이끌었다.

왜 글을 쓰고 싶었을까? 2012년 고등학생이던 딸이 2008년 출판된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선물하였다. 딸이 준 책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다. 랜디 포시 교수는 2, 3, 6살 자녀를 남겨두고 췌장암으로 2008년 47세에 사망하였다. 2006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약 2년을 더 살았다. 성장하여 아빠에 대해 기억하지 못할 어린 자녀들에게 아빠를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2년 동안 돌고래와 수영을 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살아가며 만날 장벽을 헤쳐 나갈 지혜를 남겨 주고 싶은 간절함에 아픈 몸을 이끌고 퇴임하는 대학교수에게 주는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였다. 나 또한 랜디 포시 교수처럼 딸과 아들이 있다. 2016년 논어 글쓰기를 시작할 당시 대학생과 재수생이었다. 나도 포시교수처럼 50여 생을 살며 얻은 지혜를 남기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물론 글이 아닌 직접적인 조언을 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은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 習에 설레임을 느꼈듯이 마지막 不知言 無以知人也 문장에서는 知(矢+口)자에 설레임을 느꼈다. 화살은 타깃(목표)를 가지고 직진성과 힘으로 타깃을 맞추는 것이다. 원시시대에 활과 화살은 자신과 가족 동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이었다. 知(矢+口)라는 것은 삶을 통해 學하였던 것을 矢(화살)와 같이 口(입, 글, 행동, 표정 등)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공자님께서는 논어를 통해 말에 책임을 지라고 말씀하신다. 智(지혜;지 知+日)자는 知를 통해 日(태양)처럼 만물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좋아한다. 환자분들은 지식이 있는 치과의사보다 지혜가 있는 치과의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600일 동안 310편의 글을 쓰며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궁(躬, 窮)두 글자를 가슴에 심었다. 窮(궁할: 궁, 간절할: 궁) 55살까지 살아가며 어린 새가 목숨을 담보로 날고자 하는 것처럼, 간절하게 이루고자 하였던 것들이 있었던가? 지금 있는가? 10년 전 어떤 계기가 있어 진료하는 치과원장이 아닌 다른 삶을 막연히 원하였다. 2년의 논어 글쓰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씩 알기 시작한다. 窮則通(궁하면 통한다)이라 알고 있는 문장의 원문은 주역의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궁즉변 변즉통 통즉구)이라고 한다. 간절히 원한다면 변해야 된다, 변하면 통하게 되고, 통하면 오래간다. 躬(몸;궁 身+弓) 내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窮)이 있기에 600일을 그냥 달렸다. 그리고 지금 내 삶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렇게 變하다 보면 通할때가 있을 것이다.

가끔 정리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나의 知가 누군가에게 智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병기
대덕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