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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끝에서 독립유공 치의가 되살아난다

정지영 원장, 선인 치의들 연작 활동
독립투사 노선경, 최금봉 초상화 그려


인물화는 사실 인물 자체를 그리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내면을 동시에 그리는 작업이다. 그래서 인물화가나 초상화가는 대상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천착한다.

아마추어 화가지만 발군의 실력을 갖춘 정지영 원장은 지금 특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선배인 권 훈 원장과 함께, 치과의사면서 대한민국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인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들고 나온 그림은 치과의사면서 독립유공자인 노선경 선생의 초상화. 노선경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노백린 장군의 아들로, 대한민국의 독립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훈 받았다.

국가보훈처의 기록에 따르면 노선경 선생은 황해도 송화 출신으로, 조선국민회에 숭실학교 학생으로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르고, 그 후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대한 독립단에 가입해 활동하는 한편 유하현(柳河縣) 대석탄학교에서 군사강습소를 운영했다. 1920년 군자금조달을 위해 국내로 들어오던 중 안동현에서 일경에 체포돼 신의주형무소에서 다시 옥고를 치렀다. 

권 훈 원장은 “치과의사로서 노선경 선생의 삶은 다소 불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황해도에서 개업을 하다가 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으로 온 노 선생은 군인으로 특채돼 대령으로 예편하셨는데, 이후 서울에서 개원의로서 생활을 했지만 잇따라 이전 개원하는 등 여의치 않았다.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는 게 그의 형편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영 원장이 모델로 삼은 것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노선경 선생의 가족사진. 노 선생의 얼굴만 확대에서 초상화로 그려냈다. 정지영 원장의 말이다.

“노선경 선생님의 얼굴을 처음 접했을 때 그분이 당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읽어내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만년에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편한 인상을 보여주지만, 얼굴에는 강인한 의지 같은 게 읽혀지기도 했어요. 그런 모습을 살려보려고 노력했어요.”

정 원장은 노선경 선생의 초상화 외에 치과의사면서 독립운동가였던 매지 최금봉 여사의 초상화 작업도 하는 등 권 훈 원장과 나름의 연작 시리즈를 꿰어가는 중이다. 이 작품들은 모교인 조선치대 1층 치의학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