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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추천도서-외장하드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나에게는 늘 애지중지 하는 외장하드가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붉은 외장하드(?)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많은 기록들과 사진들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후회가 되었던 일들이 어디 하나둘 뿐이겠습니까. 다만 제가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일기장과 사진을 버린 것입니다. 저는 젊은 십대 후반부터 결혼까지 거의 10여년 넘게 손글씨 일기를 썼습니다. 사춘기 고민부터 첫사랑 이야기, 대입 실패와 좌절, 군복무 때의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랑에 빠져 쓴 연습편지 내용까지 그 내용은 방대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픈 마음에 모든 과거를 잊고 새 출발하자는 의미로 버렸던 일기들이 지금은 아련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기억의 한계는 그토록 힘겨웠던 젊은 날의 일들을 잊게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억해 내고 싶은 일들에 대한 답답함을 해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손글씨 일기가 아니라 컴퓨터에 자판으로 튕기는 글들을 썼습니다. 그 기록들은 고스란히 사진들과 함께 외장하드에 들어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기록이 아무리 많아도 정리하지 않거나 책으로 내지 않으면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가치가 없습니다. 제 스스로 그 가치는 알지만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면 혹 수백 년 후에 발견되어 이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에 대한 연구 자료가 될 뿐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기록은 여전히 쓸모 있는 중요한 삶의 수단입니다.

이번 달 소개할 책들은 기록의 중요성을 너무나 절절하게 보여주는 책들입니다. 개인의 메모와 노트에서부터 고대문헌과 수많은 책들, 상세한 환자노트 기록까지 이렇게 꿰어내니 보배 같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호기심과 상상력의 천재
타계 500주기 다빈치 읽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르테, 2019

2019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타계 500주기인 해입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에도 여전히 혁신가의 1순위로 이야기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스티브 잡스는 레오나르도가 “예술과 공학 양쪽에서 모두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그 둘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그를 천재로 만들었다”라고 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잡스는 새로운 기술에 트렌디한 디자인을 접목해 IT업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빌 게이츠는 72쪽 분량의 레오나르도 노트를 구입하는 데 약 349억 원을 써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이 왜 그 정도로 다빈치에게 열광하는지 이 책을 읽기 전에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천재지만, 타고난 천재이기보다는 끝없는 호기심을 상상력과 노력으로 해결하며 스스로 천재가 된 인물입니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퇴화되어버리는 근육과도 같은 것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 그 기능을 잃고 맙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은 그가 작성한 방대한 양의 수첩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바로 저자인 월터 아이작슨이 그의 노트에 집중한 이유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몇 세기를 앞당겨 산 사람입니다. 그는 의학, 치과학, 해부학, 생물학, 지질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혁신을 이룰 단초를 스스로 알아내 연구했고 또 기록했습니다. 그는 갈릴레이보다 1세기 앞서 과학혁명의 단초를 찾았고, 오늘날 사용되는 인체 해부도의 형식을 개척했습니다. 어쩌면 치과학의 선구자로도 기억될 수 있었을 만큼 인간 치아의 모든 요소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고, 그의 노트에는 동맥경화증을 설명한 첫 사례로 볼 수 있을 만한 기록 또한 남아 있습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토록 빨리 재미있게 읽은 기억은 없습니다.

만취가 빚어낸 역사
재미난 안줏거리가 많다

『술에 취한 세계사』 미래의 창, 2019

음주에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인생을 망치게 되는 유명인들을 뉴스로 자주 보면서도 그 대열에 자신도 합류합니다. 인간사회에 드리운 음주와 만취의 어두운면은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술의 흔적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음주는 전 세계적인 문화이고 만취는 늘 존재해 왔습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축하, 의식에서 폭력의 구실, 계약을 위한 수단, 관습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며 만취의 양상도 역사적으로도 국가별로도 조금씩 다릅니다. 이 책은 인간이 술을 언제부터, 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마셨는지 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사실 인간이 왜 취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만큼 모순덩어리인 만취가 빚어낸 역사의 일면에는 생각보다 재미있고 기발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인간은 술을 만들었지만 인간을 만들고 역사를 만드는 자리에는 늘 술이 있었습니다. 없어질리 만무한 이 술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그 어떤 것보다도 휼륭한 안주가 될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당신이라면 이 책을 읽고나면 그 말들이 훨씬 더 재미있어질 겁니다.

어떤 책 읽냐고 물으면
“나 요즘 색스책 본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알마, 2019 

의료계의 시인으로 불리는 올리버 색스가 타계한 다음해인 2016년 개정판으로 나온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색스의 팬들이 많아졌습니다.

색스의 저술들은 모두 신경장애라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면서도,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특유의 흥미진진함으로 무장해 있습니다. 시, 소설, 춤, 그림, 영화, 연극, 오페라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올리버 색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인간에 대한 배려와 묘사는 뛰어납니다. 지금도 미국 대학에서는 신경학 분야뿐 아니라 문학, 윤리학, 철학 등의 교과과정에서 그의 글을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색스에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 이번에 나왔습니다. 의사, 과학자, 작가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사려 깊은 친구이자 관대한 이웃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는 올리버 색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환자에 대한 사랑과 과학적인 호기심과 연구에 대한 열정 등 의료인이라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색스가 이토록 좋은 글들을 남겼다는 것은 행운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색스의 책을 하나쯤은 꼭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얘기하세요. “나 요즘 색스책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