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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과 발산, 그리고 Lag

시론

필자의 학창시절,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교과서의 내용이 집합과 연산, 도형, 경우의 수와 확률 정도의 개념들로 일상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도 되고 예제를 내기도 쉬운 이야기들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한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난생 처음 듣는 수렴과 발산의 개념을 배우던 ‘극한’ 단원 첫날, 필자가 좋아하던 수학선생님께서 문득 철학 같은 얘기로 그날 수업을 마무리하셨다.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보통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들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더 중요한 많은 현상들이 수렴하고 발산하는 모양으로 움직인단다. 내 말 잘 기억해둬라….’

그때는 나 자신이 모르는 게 더 많다고 인정하고, 이해가 안 되면 기억이라도 해두어야 한다며 배우던 겸손한 소년이었고, 게다가 평소 선생님으로서 흐트러짐 없으시어 특별히 더 존경하던 수학선생님의 가르침이라, 늘 그 말씀을 기억하며 수렴과 발산의 시각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바라보고 이해해보려 해왔다. 어떤 변수를 0이나 무한대로 근접시키면 어떤 쪽으로 거동하며 결과치가 나올 것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반복되는 일들로 가득 찬 날들을 살아가면서, 희망하거나 근심하는 일들의 결과를 예측해보는 바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

수렴과 발산에 관련된 수학문제들을 대하고 어떤 수렴값을 답으로 얻었을 때, 그 은근한 재미는 세상의 한 귀퉁이를 이해했다는 성취감과 아울러 새싹같은 희망을 주었듯, 그 수렴값 또는 소기의 달성치들을 기반으로 우리들의 개인적 삶이나 공동체 속에서 새로이 관찰되어 설정한 변수를, 앞서 얻어진 소정의 수렴값이 의미하는 논리와 연계하여 덧붙여 나아갈 때, 우리가 생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 재미있게 모여 사는 공동체의 구조를 완성해가는 실로 기쁜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얘기지만… 진료실에서 컴퓨터의 사용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여러 임상사진과 파노라마는 물론 CBCT영상에 customized implant abutment의 3D파일까지 돌려가며 환자에게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다보면, 가끔 눈치도 없이 마우스의 커서가 죽은 듯 멈춰버린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꼭 예전 수학시간에 발산해 버린 문제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좋은 느낌이 아니라는 말일 뿐 발산하는 현상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아무튼 환자와의 대화는 당혹스럽게 멈춰지고 궁여지책으로 한 두 프로세스를 닫아보거나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가 켤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잠시 리부팅 동안만 기다리면 하던 일이 다시 이어지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별 조치없이 넘어간다.

반도체디자인과 컴퓨터전문가인 공과대학교수님 한 분을 치료하던 어느 날, 모니터를 보며 치료관련 설명을 하다가 마침 유닛체어컴퓨터에 Lag이 걸린 적이 있어 환자 분에게 해결법을 물었다. 대답인 즉, “불필요한 프로그램들을 다 지우고,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하나씩 차근차근 돌리세요. 그렇게 해도 종종 Lag이 있을 겁니다. 개발자가 상이한 프로그램들은 한 운영체제 안에서 생각하시는 것 보다 상호배려하지 않습니다, 원장님….”

‘상호배려하지 않는다…’는 표현에서 소통과 타협의 부재는 여기에도 있구나하는 푸념과 함께, 문제들이 발산하는 답답한 감이 왔다.“Lag을 해결할 좀 더 확실한 방법은 없을까요, 교수님?”

“시스템포맷을 한 번 하시고 프로그램을 싹 다시…^^”
우리들의 공동체인 치과계는 물론 우리 사회를 여러 각도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산재된 문제들이 서로 상호배려없이 작동하며 더 큰 문제들로 심화되어가며, 체제는 심한 Lag이 걸려 reset을 필요로 하는 지경으로 보일 때가 잦아졌다. 좀 더 나은 어디로 수렴해 줄지, 영원한 Lag으로 발산할 지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후자 쪽으로 근심이 기울어, 그럼 전원스위치를 잠시라도 과감히 OFF하고 다시 ON하는 거친 리부팅의 혁명을 꿈꿔보지만, 허허…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제 정신이 든다. 전원스위치 OFF의 거친 대응이 불가하다면, 소통과 상생을 위한 ‘Alt-Ctrl-Del’의 ‘작업관리자’를 띄워 프로세스들 중 한 두 개의 ‘작업끝내기’라도 실행해야 숨통이 트일텐데, 이 방법도 여의치 않아진 시대이다. 이유는 Online여론의 과민함과 인터넷의 파급력으로 무장하고, 소위 NIMBY와 NIMT로 병든 주변 프로세스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절대로 ‘작업끝내기’의 대상이 되지는 못하겠다고 주장하며 운영체제전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수렴의 과정인지 발산의 파국인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보아야할 타이밍은 놓쳤다. Lag이라는 국면이고, 좀 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얘기하면 급진이고 좌파다. 분명 Lag임에도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는 안정과 위로의 구호가 더 환영받는 시대임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수렴도 발산도 하지 못하고 연산중인 Lag에서 머물 것인가, 아니면 거칠고 과감한 포맷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껏처럼 ‘작업관리자’의 힘을 빌어 돌파구를 모색할 것인가?  또 이 부분에 대한 결정을 누가 할 것인가? 대답은 늘 같은 곳(진심어린 허심탄회의 대화와 진정한 상생을 향한 소통)으로 수렴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용호
서울 중구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