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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바퀴’ 아래서

스펙트럼

인턴 생활 10개월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정들만 하면 과를 옮겨가고 적응될 만하면 업무가 변경되는, 고달픈 나그네의 생활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치전원을 졸업해 이미 서른을 넘긴 제 체력은 이제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일과 후 회복을 위한 시간이 짧기도 하지만, 제 정신력이 그보다 짧다는 사실이 서럽기만 합니다.

 

우수한 인턴이라 기록되고자 했던 꿈도 멀어져만 갑니다. 여러 과를 거듭할수록 그간의 지식이 통합되어야 할 텐데, 파편으로 남아 혼란만 가중시킵니다.

 

식곤증에 멍때리다가 실수하기를 일삼고, 출퇴근 지문인식을 제대로 하지 않아 관리부로부터는 감봉 경고를 받았습니다. 마치 원내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불만이 쌓여갑니다. 예방치과 수련을 위해 인턴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본질적인 고민을 떠올리다가, 마이너스 통장과 각종 명세서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내 원초적인 욕구에 휩싸입니다. 오랜 터전인 서울을 떠나 타향에서 살아가는 어려움도 복합적으로 증폭됩니다.

 

설움을 잊기 위해 한 번씩 서울로 돌아가 동네 친구들을 만납니다. 직업은 서로 다르지만 놀랍게도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매일같이 더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리하지 못한 채, 반복적인 일상을 맞이해야만 하는 현실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좌절감을 토로합니다.

 

일과 중에 느끼는 기시감과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직장을 옮긴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이직 후 얼마 가지 못해 똑같은 감정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것은 아마 이들의 일과 중에 보람 내지는 위안 삼을 만한 일이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일과 시간을 떠올립니다. 서류가 아닌 사람을 마주하는 일상, 환자의 감사 인사로부터 충분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상입니다. 매일 똑같은 톱니바퀴를 돌리는 데에만 집중했지만, 일과 중에 보람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축복받은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상이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닙니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고생한 날들이 있고, 유능한 임상의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 선배님들 각자의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쳐 온 시간이 우리 일상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 노력에 비해 보상이 충분치 못하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배우는 입장인지라 어느 정도의 보상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상과 보람의 차이에 대해서도 막연할 따름입니다. 이 막연한 감각이 와 닿기까지는, 그저 ‘수련바퀴’ 아래서 일상의 톱니를 열심히 돌려야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