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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중단은 치과의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0)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요새 연명의료중단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지만, 치과와 특별히 상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존엄사, 안락사 논쟁이 있는 건 알겠지만 치과는 원체 죽는 문제랑 상당히 거리가 있잖아요? 치과의사로서 이런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익명

 

예, 질문 주신 것처럼 치과 자체가 연명의료중단이나 안락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구강악안면외과를 전공하고 3차 병원에서 구강암 치료를 하는 선생님이나 저같이 의료윤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당면 과제일 수 있겠지만 그런 분은 극소수일 테니까요. 치과의 일상과 죽음에 관한 논의는 먼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한 꺼풀 안으로 들어가 보면, 치과는 직간접적으로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존엄사와 안락사 찬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고통과 삶의 질에 관해 먼저 설명해 드리려고 해요. 여기에서, 치과는 어떻게 연계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존엄사란 1975년, 미국에서 관련 논쟁에 불을 지폈던 캐런 앤 퀸란의 사례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약물 과용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캐런을 두고 부모는 생명유지장치로 딸을 붙잡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라 생각했고, 법원에 캐런이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요청했습니다. 학술적으로 치료 중단(현재 적용된 생명유지장치의 제거)과 치료 유보(심폐소생술 등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처치를 시행하지 않는 것)라고 부르는 결정이 존엄한 죽음, 줄여 존엄사라 불리게 된 이유지요.


존엄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또는 말기환자(암 등 특정 질환에 걸려 회복 가능성이 없고 증상 악화로 담당의, 전문의가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한 환자)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질입니다. 의료행위는 보통 환자가 누리는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죠. 환자가 질병에 의해 입은 기능 제한이나 고통, 여타 영향에 의해 끔찍한 상황에 빠졌을 때 신체적·정신적 문제를 해결하여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환자가 겪는 삶의 질 하락을 개선할 수 없을 때, 어떤 의료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환자의 고통과 삶의 질 하락을 개선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런 위해를 연장하는 일은 막자는 것이 존엄사 찬성에 있어 핵심이 됩니다. 어떤 의료행위로 그것을 개선할 수 없다면, 최소한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의료행위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이죠. 존엄사 반대편에도 이 논거는 중요합니다. 단, 해석이 바뀌지요. 반대하는 편에선 첫째, 존엄사 과정을 통해 환자에게 더 큰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점, 둘째, 최대한 고통이나 삶의 질 하락을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리라는 점을 문제 삼습니다.

 

전자는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했을 때 환자가 경험할 고통을 문제로 삼지요. 호흡기를 제거하여 환자가 숨이 막혀 죽어갈 때 겪는 고통, 그 위해는 몇 달 동안 생명을 유지하여 겪는 고통보다 더 크지 않을까요? 후자는 의료자원의 문제와 이어집니다. 존엄사가 선택지로 자리 잡으면 말기환자의 고통이나 삶의 질 하락은 우리가 돌볼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치료 유보, 중단이라는 명확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죠. 이걸 선택하지 않은 사람, 즉 고통을 직접 선택한 사람에겐 굳이 도움을 줄 필요가 없게 됩니다. 말기환자에게 주어지던 의료자원을 다른 환자에게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당위성을 얻게 될 수 있고, 이는 오히려 환자 삶의 질을 더 악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거라 주장하는 것이지요.


위 주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줄여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고 하여 문제가 다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법이 임상에 적용되는 부분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 외에 고려해야 할 사항 또한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존엄사 찬반 양편이 모두 환자가 겪는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으로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렇다면 한발 물러나, 어떻게 환자의 고통을 줄일 것인가, 환자 삶의 질을 개선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이어져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서 진전이 있을 때야 우리는 존엄사가 정말 환자에게 ‘존엄한 죽음’을 가져오는 것인지에 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구강 건강은 환자가 누리는 삶의 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질병에 의해 사회생활에서 잠시 예외 상태가 되는 환자에게 있어 저작과 발음은 큰 의미를 지니죠. 최근 치아 개수나 구강 내 세균의 종류 등이 전신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이를 토대로 구강 건강이 전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이따금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는 구강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필요하지만, 이보다 먼저 우리는 환자의 경험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강 건강은 단순히 환자가 잘 씹을 수 있는지, 편하게 말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질환 경험이 환자가 처한 세계를 병실과 그 주변으로 축소할 때, 그의 생활에서 구강은 그가 좁아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말기환자 돌봄에서도 구강 건강 관리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야 합니다. 말기환자, 특히 방사선 치료를 받는 환자나 노령 환자가 치아 상태 때문에 적당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침샘 기능 저하로 입이 말라 저작과 발음에 문제가 있을 때, 또 민감한 구강 점막 때문에 대화에 불편을 겪을 때 치과 의료인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그들이 누리는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치과계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책이 이 부분에 관심이 없지요. 정부는 말기환자 돌봄이나 노령환자 관리에 있어서 구강 관리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강 전문가로서 치과계는 이런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와 시민사회에 말기환자·노령환자 돌봄에서 구강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 그리하여 말기환자가 적절한 구강 관리와 도움을 받아 삶의 질을 유지·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우리가 존엄사를 마주하여 치과 의료인으로서 지는 윤리적인 의무일 것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