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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가 게임 마우스 내려놓고 핸드피스 잡은 사연

스타크래프트 인기 게이머 이주영 원장
프로게이머 실력 날리듯 전북대 치전원 수석 졸업
“믿음 가는 진료 프로토콜 개발해 환자 진료하고파”


‘국민 게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실시간 전략 게임 ‘스타크래프트’. 높은 인기만큼이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인기도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 있었다.


2002년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이주영 씨도 인기 프로게이머 중 하나였다. 명문대 공대 출신으로 프로게이머 중 찾아보기 힘든 고학력 소유자였고, 저그 종족을 플레이하며 일꾼을 많이 뽑는 부유한 운영으로 특색있는 게임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또 귀공자 같은 외모 덕택에 여러 여성 팬들의 관심을 받았던 선수였다. 그러던 2011년, 이주영 씨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 후 그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


12월의 어느 늦은 오후, 삼성동 모처 치과 의원에서 치과의사가 된 이주영 원장(임플라인치과)을 만났다. 그는 화려한 유니폼이 아닌 흰 가운을 어깨에 걸치고, 게임 마우스 대신 핸드피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올해 4월 치과의사로 첫발을 뗀 이주영 원장은 프로게이머에서 치과의사의 삶을 시작한 것에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모든 운동선수가 그렇듯 프로게이머도 잘할 수 있는 나이가 있다. 대략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 전성기 나이로 불린다. 게임은 전략 못지않게 운동 신경도 중요하기에, 나이가 어릴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과 삶의 균형에 있어서도 현재와 프로게이머 시절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 원장은 프로게이머 당시 게임단 소속으로 합숙하며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 하루 14시간 이상을 게임에 쏟아부었다. 개인 여가를 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원장은 “은퇴 당시 프로게이머치곤 나이가 많았고, 게임에 대한 열정도 예전 같지 않아 긴 연습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치과의사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 직업적 안정성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가 프로게이머 은퇴 후 DEET(치의학교육입문검사)를 준비할 당시,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서른두 살에 새 길을 찾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수험생활 동안 여러 고비도 찾아왔다. 새로운 게임에 빠져 공부를 망치는 날도 있었다. 나태함과 의지의 줄다리기 끝에 그는 2015년 전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했다. 진학 후에는 수석 졸업으로 학위를 마쳤다.


게임 못지않게 공부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이주영 원장은 공부하고 게임 중 무엇이 더 어려웠을까?


이주영 원장은 “게임은 노력에 재능까지 겸비해야 하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며 “다만 둘 사이에 공통점도 있다. 게임에서는 상대방을 분석해 전략을 예측해야 승리할 수 있다. 공부에서 상대방이란 ‘시험’이다. 기출 문제를 분석해 시험에 무엇이 나올지 예상하며 공부해야 한다. 또 노력도 습관이라고 하지 않나. 프로게이머 시절 열심히 했던 경험이 시험 합격에 밑바탕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직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은 현재 그의 치과의사 이미지에도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프로게이머 출신이니 치료 기술도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해 찾아오는 환자도 이따금 있다.


이주영 원장은 “프로게이머 시절 컨트롤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다. 큰 경기 무대에서는 긴장 때문에 게임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며 “다만 게임 컨트롤과 치과의사의 술기는 엄연히 다르다”며 웃음지었다. 다만 이러한 인식에 대해 이주영 원장이 경계하는 측면도 있다. 전직 프로게이머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내가 만약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면 ‘프로게이머 출신이니까 그렇지’하는 편견이 싹틀 수도 있다. 현재 열심히 활동 중인 프로게이머 후배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것”이라며 “프로게이머 시절 전략을 연구해 승리한 것과 같이, 치과의사로서 믿을 수 있는 프로토콜을 개발해 환자를 진료하고 싶다. 환자의 말을 최대한 경청해 따뜻하고, 다정한 병원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