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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진료가 아니냐고 묻는 환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3)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최근 부쩍 과잉진료를 말하는 환자들이 늘었습니다. 양심에 따라 진료한다고 자부해온 저로서는 이런 상황이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다니는 사람을 붙잡고 호소할 수도 없고, 내원한 환자마다 제가 과잉진료를 하지 않으니 믿어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이 상황,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익명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작년 과잉진료를 심하게 하는 치과의사가 있다는 이야기가 공중파를 탄 이후, 아니 이전에 소위 ‘양심 치과의사’가 다른 치과의사들을 과잉진료한다고 매도할 때부터 이런 분위기는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죠. 더구나 연초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일단 주변을 의심하고 보는 시국에 치과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지켜줄 보호막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질타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결코 우리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잉진료라는 프레임이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고 점차 강화되고 있기에, 치과의료는 당분간 이 문제로 홍역을 치르게 될 거로 보여요.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려 흠집 내기 전략을 쓰던 일부 치과의사의 노력이 누적되어 이제는 만선에 이른 것인데요. 주의 깊게 지켜보셨던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조립식 임플란트가 암을 유발한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린 치과의사가 있었는가 하면, 모 치과 그룹의 대표는  자신은 환자를 위해 진료비를 낮추려고 했을 뿐인데 다른 치과의사들의 음해와 중상으로 고난을 겪고 있다는 자신의 메시아적 환상을 담은 소설을 사실인 것처럼 발표하여 퍼뜨리기도 했으니까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한 치과의사는 다른 치과의사의 과잉진료 실태를 알린다고 유튜브에 연일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심지어 이런 활동으로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개별 치과의 문제를 넘어서는 이 일은, 전문인으로서 치과의사 집단 전체의 신뢰에 대한 문제이자 언론을 통해 형성되는 치과의사의 이미지와 닿아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치과의사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위에서 열거한 여러 악영향이 치과의사 일반의 신뢰를 깎아 먹었습니다. 이번 과잉진료 사건에서 보듯, 언론은 문제가 있는 치과의사를 흥밋거리로 보도하는 데 급급합니다. 여기에서 해당 사건이 진행되었던 과정이 참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런 제 살에 흠집 내는 활동이 계속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과는 별개로, 이미 쏟아진 짐을 주워 담는 작업을 우선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식의 비방이 어떤 언론에서도 다뤄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손상된 이미지가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그 답의 하나로 치과의사의 공적 이미지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려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적 이미지란, 특정 집단이나 직종을 정의하는 이미지 또는 상(像)을 해당 집단이나 직종이 공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아직 치과 쪽에서는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으니 의과의 예를 들어볼게요.


대한의사협회는 2014년 “한국의 의사상(像)”을 발표했습니다. 이 문건은 대한민국 의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역량을 규정하고 있지요. 크게 ‘환자 진료’, ‘소통과 협력’, ‘사회적 책무성’, ‘전문직업성’, ‘교육과 연구’의 다섯 가지 영역을 놓고 각 영역에 세부 역량을 설정함으로써 한국 의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해 볼까요? 의사는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하여 신뢰를 유지하고, 환자·보호자·사회와 상호 소통하며, 환자 건강과 사회 안녕을 증진하기 위해 전문지식을 활용, 의료 자원의 배분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전문적인 규범과 자율 규제를 따라 윤리를 확립하고 평생 교육과 최신 의학 지견의 개발, 습득·보급에 힘써야 하지요. 현재 한국의 모든 의사가 여기에 속한다고, 또는 여기에 따라 잘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사 전문직이 자신에게 직접 부여한 공적 이미지로, 선언하는 순간부터 이 이미지는 구속력을 지니게 됩니다. 누구도 언급하지 않아 폐기되지 않는 한, 공적 이미지는 해당 집단의 구성원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가지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위 다섯 가지 영역을 기준으로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의 졸업성과를 설정합니다. 졸업성과란 학교 졸업 시점에 학생이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행위 목록을 가리키는데요. 이 협회에 전체 의과대학과 의전원이 소속되어 있으며 대학장 또는 대학원장이 협회 회원이 되기 때문에, 설정한 졸업성과는 전국 의과대학, 의전원의 학업 평가에 반영됩니다. 즉, 의학 교육의 목표 설정에 이 공적 이미지가 그대로 반영됩니다.


한참 의과 쪽 칭찬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의사상”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 문헌은 의학교육학의 관점 아래서 교육을 목적으로 설정된 것이라, 교육학의 ‘역량’ 개념을 토대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역량이란 학습의 결과로 학생이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위에서 ‘신뢰를 유지’, ‘소통’하고 ‘지식을 활용’하며 ‘배분에 참여’, ‘교육에 힘씀’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의사상을 규정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런 규정은 평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지칭하는 대상과 목적이 모호해져 버립니다. 의사상에서 말하는 의사는 누구일까요? 이런 이미지는 무엇을 위한 걸까요? 예컨대, 소통을 잘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환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효율적으로 선택하여 환자가 좋은 선택을 내리도록 돕는 것이 중요할까요? 소통은 부차적인 수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통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은 탁월한 의료적 의사결정이죠. 즉, 역량은 목적과 수단을 전도(顚倒)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더구나, 역량을 정의하는 표현은 비전문가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의사상”이 사회에서 인용되지 않는 것은 바깥에서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과잉진료하는 치과의사’라는 억울한 외적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 우리는 의과의 작업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공적 이미지를 새로이 만들어 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이미지는 현실에 있는 의료인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치과의사상(像)은 그저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뒤이을 후배들을 이끌고 구속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의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느 정도 교육학의 성과를 취하되 이 결과물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과잉진료’라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성실과 존중’과 같은 일반 특성, ‘구강건강 회복’, ‘구강보건 확산’과 같은 치의학적 목표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작년 과잉진료 사건을 놓고 많은 분들이 자율징계권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작은 목소리나마 거들었고요. 문제가 있는 구성원을 해결할 방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불어서, 추락한 이미지를 다시 쌓을 방법도 필요합니다. 치과계가 힘을 모아, “한국의 치과의사상”을 만들어보면 어떨지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