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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수리공과 카스테라

Relay Essay 제2407번째

오후부터 내린 장맛비는 어두워지고 나서는 장대비로 바뀐다. 이따금 번개가 치곤 한다.

천둥소리도 그 뒤를 따르고. 밤 10시 즈음.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뭔 전화다냐, 비상인가?”

아빠는 혼잣말 후, 전화기를 드신다.

“네. 여보세요.”

“수북하고 월산에서?”

“알았어”

전화를 끊고 아빠는 잠옷을 벗고, 곤색의 작업복으로 갈아입으신다.

“나가 봐야겄네”

‘이렇게 비가 온디, 나갈라고요.?’

“그럼 나가봐야지. 비상인디, 수북하고 월산이래”

‘아이고 장마 때만 되면 난리네요.’

“벼락만 안치믄 되는데… 벼락이 칭께, 고장이 잘 나부네”

“우리 밥줄인디 열심히 고쳐줘야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전화랑 전기가 끊기면 불편하잖는가?

“ 준비하는 5분도 안 된 사이, 밖에는 어느새 빨간색  우체국 공사 차량이 와서 대기 중이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셔요.’

‘아빠 잘 다녀오세요.’

우리 오남매는 아빠에게 배웅 인사를 하고, 다들 각자의 방, 이부자리로 들어간다.

나는 엄마랑 큰방에서 눕는다.

‘뭔 일 없겠지?’

‘아빠는 뭐든 잘하시잖아! 만물박사! 아무 일도 없으실 거야!’

나는 호기롭게 아빠를 자랑삼아 위안을 삼고 어느새 꿈나라로 간다.

 

비는 언제 왔나 싶을 정도로 맑게 갠 아침. 형들, 누나들은 아침 일찍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고, 나와 엄마만 있던 여유로운 79년도 여름 아침. 아빠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아이고 하룻밤을 꼴딱 샜네.” ‘아이고, 수고하셨어요.’ ‘다 고치셨다요?’ “응, 다 고쳤제, 그럼 남겨놔?”하시며, 하얀 이를 드러내시며 웃으신다. “어여 밥 차려. 배고프네.” “막둥이 잘 잤능가?” 아빠는 나에게 강제로 뽀뽀를 하신다. ‘앗! 깔끄러워! 아빠 수염 엄청 까끄러워’ 아빠는 면도 전이시라, 수염이 덥수룩. 아빠는 옷을 갈아입으시고, 씻으러 가신다.


‘여보! 아침 식사 핫쇼. 시장하실 턴디.’ 둥그런 갈색 식탁에는 정갈히 놓인 수저와 젓가락. 반찬은 엄마의 실력, 빨간 두부찌개와 신김치, 계란 후라이, 어젯밤의 김치찌개가 놓여있다. 한참 만에 아빠는 말끔히 샤워와 면도를 끝내시고 머리를 말리시며, 식탁에 앉으신다. “아이고 깜빡했네. 막둥이, 니 먹어라!” 아빠는 식사하시려다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곤색 작업복 주머니에서 부스럭 비닐봉지에 쌓인 뭔가를 내놓으신다. ‘우와 아빠 감사합니다!’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스테라빵. 주저 없이 부스럭부스럭 비닐 봉투를 열심히 뜯는다. ‘엄마도 드세요.’ ‘난 아침을 먹어서 안 먹고 싶어야!’ ‘아빠도 안 드실 거예요?’ “난 안 먹는다. 너 다 먹어라.” ‘네 잘 먹겠습니다.’ 작은형도 학교에 갔고, 오랜만에 빵 하나가 온전히 내 차지가 된다. 아빠가 식사하시는 옆에 앉아, 열심히 카스테라빵을 아껴먹는다. 조금씩 조금씩 없어질라 떨어질라.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다 있구나’  ‘나는 정말 돈 많이 벌면 전방 사장님이 될 거야!’ ‘맛있는 것,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슈퍼 사장님!’


아빠의 식사시간이 끝나갈 쯤에도, 카스테라는 아직 절반 이상 남아있다. 아껴먹던 카스테라빵을 다 먹은 후엔, 제일 중요한 마지막 단계. 종이에 붙은 부분의 빵부스러기마저 깨끗이 빨아먹는다. 종이마저 먹고 싶구나! 오늘은 수지맞은 날이네. 경쟁자 작은형도 없고. 아빠는 아침식사를 다 드시고, 9시가 되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다시 일어나신다. “아이고 나가봐야지” “좀 쉬었다 눈 좀 붙이고 가제?” “출근해야지. 밑에 직원들 안 나와서 사람이 없어. 나가봐야지. 쉬더라도 우체국에서 쉬어야지.”


지금은 KT지만, 예전으로 돌아가면 한국통신, 그전엔 한국전기통신공사였지만, 80년대 전에는 통상 체신부 우체국 소속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기어이 아빠는 작업복을 입으시고, 빨간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신다. 그 당시 낮잠을, 피곤해서 쉬고 싶어 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본인을 위해 운동을 하시듯 산책을 하신 것도, 따로 등산을 위해 시간을 내시는 것도 못 보았다. 은퇴 후 농장을 그만두시기 전까지 절대 쉬지 않는, 말 그대로 우리 집 기둥이시자, 멈추지 않는 밧데리셨다. 식사 맛있게 잘 하시고, 어깨는 딱 벌어지시고, 허벅지는 누구보다 굵으셨고, 손의 악력은 세계최강, 머리는 2:8, 얼굴은 훤한 이마까지 항상 진한 스킨 향으로 젊음을 유지하셨다. 아빠의 전성기 40대의 초상. 아빠는 영원한 강철 밧데리맨.


아빠는 그즈음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숙직을 하셨고, 숙직 후에는 꼭 카스테라 빵이나 라면을 하나씩 들고 오셨고, 먹거리가 부족하던 그때 나와 우리 형제들에게 입속의 작은 기쁨을 선사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카스테라 빵을 볼 때마다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 빵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빠의 그 시절이 회상돼 보는 것만으로 너무 좋다. 무뚝뚝하시지만 따뜻한 아빠, 나를 예뻐하시던 젊은 시절의 부모님, 사랑받던 막둥이 시절의 나를 찾아가 카메라로 그 상황들과 주변을 동영상으로 찍는 느낌처럼. 빵 하나였지만, 그 하나로 행복했고, 드시고 싶은 빵을 꾹 참고, 주머니 깊숙이 넣고 오신 아빠의 맘은 또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식탁 옆에서 맛있게 오물오물 거리며 먹는 이제 7살의 막둥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 부모가 돼보니, 아빠의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


아빠의 비상출근은 한번이 아닌 비 많이 오는 날, 벼락 친 날, 조금 높은 직급이 되신 90년대 전까지는 연중 두어 번 이상 되풀이되는 일상의 연속 중 하나였다. 그렇게 비상출근과 숙직을 은근히 바라는 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빠가 그렇게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시는 줄은 40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