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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의 전쟁

스펙트럼

절친인 신부 둘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결혼식을 할 처지가 되면서 일어나는 다툼과 해결을 보여주는 코미디 영화이다. 눈, 코, 입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예쁘게 보던 앤 해서웨이가 밉상을 자처하고 수많은 출연작과 수상에 빛나는, 그것들보다 더 빛나는 미소를 가진, 케이트 허드슨이 열연했지만 한국에서의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결혼에 성공하는 사람은 케이트 허드슨이 연기한 리브이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엠마는 충격적이게도 결혼식장에서, 혼인서약도 하지 않은 채 결혼반지를 빼고 만다. 이 상황도 해결은 된다. 세팅도 전개도 뭇 한국 드라마 못지않게 막장인 가운데 한술 더 떠서 고구마만 있고 사이다는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순리에 맞을 것 같은 한 가지가 있었으니…

 

결혼에 골인한 리브는 성공적인 변호사였다. 외향적이고 직선적이었다. 변호사 일에서는 타협과 절충보다는 깔끔한 정리를 통한 해결을 추구하는 타입으로 묘사되었다. 엠마는 교사였다. 동료 교사의 많은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있었고 많은 것을 마음속에 쌓아두다가 감정이 넘실넘실할 때가 되어서야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각자가 높이가 다른 감정의 둑을 가지고 있을 뿐,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리브와 엠마는 결혼과 관련된 많은 업무와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고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리브의 신랑은 그런 리브의 모습을 잘 받아내지만 엠마의 결혼 상대자는 예민한 엠마의 모습을 받아내지 못하고 엠마와 다투기에 이른다. 결국,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끼리의 난투극이 벌어진 가운데, 엠마가 자신의 결혼 상대자에게, “나 사랑하니?”로 압축되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고구마의 대미가 장식된다. 순식간에 가슴팍이 콱 막히고, 명치 끝이 죄어오도록 갑갑한 역대급 고구마를 씹을 새도 없이 삼켜버린 남자는 제 발로 떠나가고 결혼식장은 리브 커플의 것이 된다.

 

한국 관객 10만에 불과한, 개인적으로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영화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엠마의 모습이 지난 세월 속의 나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 같지만 문제 해결자는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짊어지고 쌓아둘 줄은 알아도 문제를 줄여가는 방법은 알지 못하는 사람… 차라리 약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줄여갈 줄 알고, 그 틈새를 타고 일어나는 선순환을 반복적으로 일으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마흔 남짓, 적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겪은 세파가 이렇게 감당하기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짊어져야 할 것들은 많아지는데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줄여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 자의든 타의든, 진료실에서는 갈수록 완벽이 요구되고 직원들과의 나이 차, 세대 차도 커져만 가서 정서적으로 접점을 찾는 엠마의 장점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치과가 이름값은 하고 있는지… 환자와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도 ‘스몰 톡’이라 하여 경영기법으로 기술되고 있는 판국에 환자분과 한 두 마디 더 나누면, 치과대학 재학 시절부터 중요하다고 들었던, 진정한 의미의 라포가 내 치과 안에 감돌아 줄까… 문제 해결자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정 떨어질 정도로 냉정하게 진단하고 치료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재식술, 치근단절제술 같은 것은 진작에 개원 치과에서 해서는 안 되는 치료가 되었고, 이제는 직접치수복조, 어떤 경우에는 재근관치료 같은 보존적 치료도 환자의 이해와 협조가 부족해서 시행할 수 없는 치료가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실패의 리스크를 감당해가면서 환자의 치아를 살리느라 짊어졌던 마음의 짐을 이제는 내려놓아도 될까… 결혼식 날, 엄마가 기뻐할 것이라 믿고 엄마의 웨딩드레스를 꺼내 입은 엠마를 본 엄마가 “너만 좋다면 갈색 포대를 입고 결혼해도 난 상관 안 해~”라고 말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