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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성과 조언에 대한 고찰

Relay Essay 제2413번째

코로나 사태로 집에 박혀있게 되자 휴대폰 보는 시간이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2월에는 분명 책도 읽고 운동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9월이 된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면 휴대폰 사용량만 늘었다. 내 휴대폰 사용량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은 SNS이다. 애매하게 짧은 시간을 보낼 때 SNS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 때 올라오는 여러 게시물들을 보면 친구들이 재밌게 살아가는 모습도 있지만, 갈등의 장이 되어있는 게시물들도 꽤 보인다. 대표적으로 서로 다른 세대 간 갈등이라든지, 아니면 남녀 갈등 등이 있다. 이런 글들을 보면서 댓글창의 사람들은 왜 서로 갈등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갈등의 원인 중 하나와, 이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SNS상 느낀 갈등 중 가장 흔한 유형은 ‘너가 뭔데?’로 시작하는 갈등이었다. 즉,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시작한 갈등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뭐라도 할 시도를 해야지, 불만만 표출하다니 배가 불렀다’, ‘우리는 ○○을 경험하는데 그런 것도 겪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언쟁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익명 공간인 SNS라는 점에서 현실보다 과장된 면이 있겠지만, 단순히 인터넷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윗세대를 꼰대라고 취급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으며, 혐오성 표현을 농담처럼이라도 뱉는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서로에 대한 공감 부족이라는 뻔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타인에게 공감한다 하더라도 내가 상황이 힘든데 타인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추상적 기준을 바탕으로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위 사태의 또 다른 원인을 정당성과 말의 방식 차원에서 제안하고자 한다.


사실 하는 말을 분석해보면 모두 ‘너가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는 조언과 ‘이렇게 하지 않았으니 말을 하지 마’라는 정당성 부족을 지적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간디가 한 아이에게 사탕 먹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 본인이 사탕을 끊느라 2달이 걸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본인이 뱉는 말에 대한 정당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보다 특정 분야에서 더 나은 사람은 많지만, 그들 또한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논리에 따라 사람은 살면서 어떠한 불만도 표출할 수 없을 것이고, 또 타인에게 충고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정당성과 별개로 화는 날 수 있고, 또 서로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 발전이 없다면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온전한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했더라도, 타인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정당성 없이 타인에게 마구 충고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개인의 노력이지, 정당성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조언을 할 자격이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서 충고를 받으면 트집잡히는 기분이 드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나 또한 그렇게 느낄 때가 다수 있었다. 그럼 정당성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의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며, 내가 조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여기서의 문제도 정당성 자체보다, 조언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또 조언을 어떤 식으로 받아 들이는지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조언의 방식이 조언의 납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솔직히 조언을 들을만한 상황이라면 내가 기여한 잘못도 일부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 따라서 조언자가 정당성이 없더라도 내 잘못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납득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고, 조언자가 충분히 정당성이 있음을 알더라도 화만 났던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언을 해야 하고, 충고를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조언을 할 때는 상대가 스스로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질문을 먼저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표현한 후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면 좋은 것 같다.


사실 내가 남에게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할 나이는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조언을 들었을 때 거부감 없이 따를 수 있었다. 조언자가 공감함을 표시하기 위해 본인의 사례를 들 때는, 조언 해주심은 감사하지만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상대가 겪는 상황과 내가 겪는 상황이 100% 같을 수는 없고, 결국 본인이 어떻게 그 상황을 잘 해쳐나갔다는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 힘든 일을 현재 겪고 있는 나에게는 단순히 자랑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충고를 받아들일 때는 타인의 의도가 나를 해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때 내용을 받아들이기 더 좋았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조언자가 겪은 세상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고, 조언자 또한 완벽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완벽하지 않으며, 완벽하지 않은 사람의 말을 수용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타산지석 삼으면 나는 조금 더 발전할 것이다. 상대의 말을 꼰대의 말로 치부하기만 한다면 내게 진짜 필요한 말을 듣기 어렵다.


이는 훗날 내가 치과의사가 되었을 때 어떤 의료인이 되고 싶은 지와도 상관있다. 치과의사는 서로의 조언을 통해 환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내가 타인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언을 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타인의 조언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환자에게 더욱 적절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치과의사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 내가 타인에게 조언을 해야 하는 나이와 지위가 된다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언하여 그분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분이 가지 않아도 될 길로 들어서지 않게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인터넷 하던 것에서 시작하여 이런 생각까지 꼬리를 물게 되었다. 쓰다 보니 누군가는 이마저도 꼰대의 소리라고 치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위의 내용을 완벽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치과대학 예과생의 짧은 소견을 읽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고, 다들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