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미용실에서 고양이가 영업을

Relay Essay 제2419번째

그 미용실 고양이들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츄리닝을 입고 동네 산책을 하던 중이었는데, 통유리로 된 미용실 유리문 안에서 냐아냐아 울고 있는 노란 고양이를 발견했다. 울음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고양이의 핑크색 혓바닥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무지하게 심심하다고. 그래, 내가 놀아줄게. 나는 쭈그리고 앉아 주먹을 쥐고 통유리 문을 톡톡 두드렸다. 어슬렁어슬렁 유리문 바로 앞으로 다가온 고양이는 갑자기 푹 주저앉더니, 꼬리로 바닥을 몇 번 탁탁 쳤다. 어떻게 놀아주지, 나는 하얀 마스크를 벗어 고양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흔들었다. 고양이의 눈꼬리가 점점 가늘어진다. 그러고는 찢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훽 뒤돌아 가버렸다. 실룩거리는 노란 고양이의 엉덩이를 아쉬운 눈길로 좇던 나는 멀리 스크래쳐 위에서 자고 있는 작은 노란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발견했다. 유리문에 빛이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아 두 손으로 빛을 가리고 열심히 쳐다보았다. 이 여자 뭐지, 하고 쳐다보는 행인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후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그 미용실 앞을 서성거렸다. 내가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야 뻔하다. 약속 없는 주말, 날씨가 좋을 때. 몇 번의 탐색을 통해 알아낸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크고 작은 노란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는 것, 둘 다 주인(미용실 원장님)의 연락처가 새겨진 목걸이를 하고 있다는 것, 주인이 문을 열어주면 잠깐씩 바깥에도 나가는 외출냥이라는 것, 그 미용실은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고 토요일도 일찍 마감한다는 것 등이었다. 몇 차례 고양이들과 안면을 트고 나니, 1년이 훨씬 넘도록 다듬지 않은 나의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6개월에 한 번 정도는 미용실에 갔었는데, 이 기회에 머리나 한번 해볼까. 코로나 사태 이후 집순이로 거듭나 헤어스타일에 신경 쓸 이유 따위는 없었지만 그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어렵게 잡았다. 예약이 어려웠던 것은 그 미용실이 주말에 길게 영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글날 점심시간대로 약속을 잡았다.


드디어 예약 당일이 되어 미용실 통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럴 수가, 대기실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이며 열심히 눈알을 굴려보았지만 고양이들이 없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쪽문이 열려있다. 이런 운도 없지, 고양이들이 외출을 했구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좀 있으면 볼 수 있겠지 싶었다. 내가 하려는 펌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하지만 샴푸를 하고 머리를 자르고 연화를 하고 머리카락을 동글동글 말고 열선을 연결했지만 고양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머리카락에 뜨끈한 열감이 올라오기 시작한 무렵, 등 뒤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냐아냐아 냐아냐아~~~ ’ 나는 나도 모르게 획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머리카락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열선들이 출렁거린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으세요?’ 멀리서 어시스턴트가 묻는다. ‘아.... 조금 뜨거워서요.’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하고 달려오는 어시스턴트의 바쁜 발걸음에 노란 고양이가 엉겨 붙는다. 난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픽 웃었다.


시술이 끝나고 마지막 샴푸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약품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동여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는데 고양이들이 내 슬리퍼에 관심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 슬리퍼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있는데 우리 집 고양이들도 이 방울에 환장을 하니까. 고양이들이 나를 쫄래쫄래 따라 오니 어쩐지 조금 뿌듯한 기분이 되었다. 샴푸용 의자에 길게 누워 어시스턴트에게 머리카락을 맡겼다. 부드러운 거품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는데 발목 언저리로 따스하고 매끈한 촉감이 느껴졌다. 고양이구나. 둘 중에 어느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무진 앞발로 내 슬리퍼에 달린 방울을 툭툭 쳤다. 나도 모르게 또 웃었다. 머리 끝, 그리고 발끝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간질거리는 긴장감이 즐거웠다.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리고 미용실 원장님이 간단한 관리법을 말씀해주셨다. 묵혀왔던 머리카락을 자르니 가볍고 산뜻하다. 거울 속의 새로운 나를 바라보며 이젠 정말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네 이런 생각을 했다. 데스크 직원이 카드 결제를 하는 동안, 나는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들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두 마리가 모두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내 등을 스윽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 바쁜데, 역시 영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로구나. 아쉬웠다. 내가 주인이었다면 인센티브로 츄르(고양이 간식)라도 줬을 텐데. 유리문을 나서며 고양이들에게 눈인사를 한다. 안녕! 또 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