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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을 무시하고 환자만 우선하는 게 가능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1)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의료윤리가 무조건 착하게 살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도 알겠고, 환자의 필요를 우선하라는 게 왜 중요한지도 알겠어요. 하지만, 환자의 필요를 무조건 우선할 수는 없잖아요? 당장 저는 개원의로서 제 병원을 잘 운영할 책임이 있고, 그 말은 저와 우리 직원들의 생계를 잘 꾸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요. 환자를 우선해야 하는 만큼, 제 가족과 직원도 우선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익명

 

국내 치과의사 대부분은 자신이 치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부 고용되어 일하는 봉직의가 있지만, 의과보다 비중은 훨씬 낮지요. 여하간 개원의와 봉직의 모두 진료하면서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에 쌓이게 되고, 이것은 치과의 특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연 치과는 상업일까요, 아니면 전문직일까요.


전문직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기분은 좋지만, 별로 돌아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둘 사이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사업가도 윤리가 있으니 결국 치과가 상업이라 해도 지켜야 하는 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상업이라 한다고 하여 바뀌는 것은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지요.


우리는 학교에서 윤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주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좋은 말 하는 분야 또는 잔소리하는 분야로 느끼도록 학습을 하게 되어 있고, 대학교 이후에선 윤리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최근에 상황이 조금 바뀌어 연구윤리를 배운 적이 있거나, 과제 제출과 관련한 표절 방지의 문제를 학교 때 들은 적이 있다고 하실 선생님도 계실 것 같아요. 그러나 여전히, 상업 윤리(business ethics)와 의료윤리의 차이는 무엇인지, 행동에서 다른 점은 무엇인지 들을 기회는 없습니다.


상업 윤리란 무엇일까요? 상업을 위해 시장에 참여하는 자, 즉 판매자 또한 지켜야 할 윤리가 있습니다. 이를 성실(integrity) 또는 진실성(veracity)이라고 부릅니다. 구매자는 판매자가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그가 자신의 정보나 판매 전략을 통해 자신을 조종(manipulation), 강압(coercion)하지 않을 것을 기대합니다. 둘 사이 매매 계약이 문제없이 수행되리라 믿으며, 판매자가 부정한 방식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지 않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런 점을 위반하는 판매자는 시장에서 퇴출당하거나 법적 제재를 받게 되지요.


전문직에게도 이와 같은 내용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실성을 윤리 원칙으로 수용한 것은 치과의사가 유일합니다. 미국 치과의사협회(ADA)가 수립한 치과의사의 윤리 다섯 가지는 환자 자율성, 선행, 악행금지, 정의, 진실성입니다. 2005년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정한 치과의사 윤리헌장이 정한 네 가지 원칙은 환자 복지, 환자 자율성, 사회 정의, 진실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의과에는 진실성이 없냐고요? 네. 의사 윤리의 원칙은 네 가지, 환자 자율성, 선행, 악행금지, 정의입니다.


치과의사에게 진실성의 원칙이 부가된 것은 의료와 치과 의료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치의학은 상업적인 요소가 의학보다 강합니다. 그렇다면 의학의 관점을 가져와서 치의학이 상업이라고 비난해도 될까요? 아닙니다. 그런 주장을 소위 범주 오류라고 하지요. 의학과 치의학은 다른 범주이며, 따라서 적용되는 윤리도 달라야 하는데 같은 범주라고 생각하여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치과의료윤리에선 이런 치과의 상업적 특성을 전적으로 끌어안고 고민합니다. 여기에선 상업 윤리와 치과 전문직 윤리가 비슷한 점이 있으나, 차이점도 있음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회사 운영자와 치과의사 모두 진실해야 한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그렇다면, 둘 사이 차이는 무엇일까요? 여기에선 의무, 훈련, 관계의 세 측면으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치과의사와 회사 운영자 모두 활동을 통해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단, 치과의사는 여기에서 환자와 지역사회를 향한 의무를 함께 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치과의사는 환자의 이익을 우선하고, 전문직의 표준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을 집니다. 즉, 치과의사가 정당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타당하나, 환자의 이익을 저버리면서까지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선이 과잉진료를 가늠하며, 치과의 이익과 환자의 이익이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을 보일 때 치과의 이익을 후순위에 둘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이해상충이 벌어질 만한 상황은 예측하고 피해야 합니다. 근거에 기반을 둔 치료 표준을 확립하고 이에 따른 진료를 수행하는 것이 그 방법이 되겠지요. 비록 치료 표준은 치과마다 다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현재 치의학의 수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최소 요건을 지고 있습니다.


다음, 치과의사는 자신을 훈련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물건 판매자는 훈련을 통해 더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경쟁의 전략으로 활용합니다. 반면, 치과의사는 적절한 표준에 맞는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는 계약에서 끝납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것을 벗어난 구매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의무가 판매자에겐 없습니다. 그러나, 치과의사는 환자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는 매매 계약을 넘어 치과의사 전문직과 사회가 의무와 권리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초합니다. 치과의사는 이를 통해 환자의 신뢰를 얻고, 환자는 자신이 불평등한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내용을 안다고 치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갈등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 치과의사는 고민할 겁니다. 그것은 사회적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이며, 환자와 치과의사의 관계를 규정하는 요소가 달라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의 도입도 여기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과 국가의 역할이나 범위도 계속 움직이지요. 이런 상황에 맞춰, 우리는 개별 상황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고민이 모여 치과의사와 환자를 위한 더 나은 한 걸음을 만듭니다. 고민 없이 서로의 이익을 중시하며 나아갈 때 치과의사와 환자는 점점 불화하게 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벽 뒤로 숨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여기 어디쯤이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계속 이렇게 악화 일로를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대를 위하여 우린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정당한 수익을 내면서도 환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