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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친해지기

Relay Essay 제2421번째

인생은 끝없는 도전과 성취,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의 깨달음을 통한 새로운 도전의 반복인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이제 대학만 가면…”, 치대에 입학했을 때는 “이제 졸업만 하면…”, 치과의사가 된 후엔 “이제 개원만 하면…” 등등 매 순간 미래의 가시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하며 지금까지 달려, 어느덧 개원의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낀다.


초, 중, 고 시절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고,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고 성적이나 진로 설정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로 떠밀려 들어가며 친구들과 경쟁을 하게 된 것이 불씨가 되어, 여전히 도전 없는 삶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치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독일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내 자신을 위해서도 낙제를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몇 년을 공부에만 열중하며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 치과의사 면허 취득 준비를 하던 시절에는 ‘꼭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에 열중하며 살았다. 페이닥터 시절을 거쳐 개원의까지 오는 동안에는 임상의로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채우다 보니 오늘이 됐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소싯적 시작된 도전의 불씨가 매일매일 나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선배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둘 중 하나의 반응이다.
“나도 그래.” 또는 “원래 그래.”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혹시 지금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지금까지 인생을 살며 나를 불태운 것에 대한 대가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만으로는 이 공허함을 달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앞으로 나를 태우는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필요해서’가 아닌 ‘원해서’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퇴근하면 나를 반겨주는 집사람과 세 살배기 딸, 그리고 아직 태어나기 전인 둘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좋은 것을 보고, 경험하며 살 것이다.


이제는 치열함을 조금은 내려놓고 여유로움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며, 무료한 시간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런 시간을 즐기며 살 수 있는 인생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