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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웃음소리

시론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필자가 개원한 이곳은 전국에서 평균연령이 제일 높다보니 환자분들 대다수 연세가 많으시다. 예전에는 아이들도 제법 있어서 환자의 연령층이 다양했었는데 술자가 나이 듦에 따라 함께 환자의 연령층도 높아졌겠지만 이제는 소아 청소년 환자가 별로 없다. 출산율도 낮아진데다가 자녀가 있는 경우 가까운 도시로 이사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리라. 초등학교도 전교생 수가 몇 명 되지 않아 통합운영 되고 폐교 되는 경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면소재지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아기울음 소리 듣는 게 참으로 희귀할 정도다. 이런 지역에 살다보니 유입인구는 적은데 남아있는 단골환자들도 필자와 같이 나이를 먹게 되니 노인환자가 많은 건 당연한 현상이리라.


전국적으로 치과의사 수는 점점 늘고 인구는 줄어드니 개원환경도 예전 같지가 않다. 노인환자가 특히 많은 이곳의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이전에는 필자의 치과가 2층이어도 별 문제를 못 느꼈는데 근자에는 대다수 환자들이 2층에 치료받으러 올라오시기가 힘들다 하신다. 새로 개원한 근처의 치과의원들 모두가 1층이다 보니 경쟁력에도 뒤처질 듯하고 단골 환자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1층으로 이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행에 옮기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얼마 전에 과감히 옮겼다. 산뜻한 진료실에서 진료하게 되니 나로서도 기분이 새로워지고 출입이 자유로워지신 어르신들의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에 좀 더 일찍 옮길 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찾아주셔서 우리치과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틀니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이 모든 게 나의 천직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정이 깊은 시골에 살며 많은 일상사 얘기를 나누게 되고 틀니를 새로 하고 싶어도 자식들 부담될까봐, 또 앞으로 살아봐야 얼마나 산다고 하시면서 틀니를 안 하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정작 새로 제작해서 장착하고 나면 나이 먹을수록 먹는 낙이 최고라고 하시며 대부분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웃으시며 흡족해 하신다.


지금도 생각나는 할아버지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족이 겨우 설득해서 모셔왔는데 이가 거의 다 상실한 상태로 불편하게 살아오셨다. 예전의 헌 틀니로 겨우겨우 사용하고 계시면서도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냐며 새 틀니치료를 완강히 거부하셨다. 효성스런 자제분의 간곡한 설득으로 틀니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행히 말씀과는 다르게 진료에는 매우 협조적이셔서 치료하는 나로서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분이 마지막 장착을 앞두고 간밤에 주무시다가 조용히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새 틀니 필요 없다며 속내를 감추시다가 치료하시면서 새 틀니 끼고 제대로 맛난 것 드시겠다고 기대하셨는데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떠나셨으니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생각하니 나로서는 너무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제분께서 입관 전날 완성된 새 틀니를 관속에 넣어 드린다며 가지고 가셨다. 멀리 떠나신 할아버지께서 지금 잘 사용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헐헐헐 웃으시는 듯하다.


 노령 환자는 늘고 자연사든 병사든 농촌 인구는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암울한 현실, 지금까지 우리치과를 다녀가신 많은 어르신들이 다시 찾아 올 때의 반가움과 세상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침울함이 교차되며, 오늘도 치과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저 반갑고 감사하기만 하다. 이제 살아봐야 얼마나 산다고 하시면, 그런 말씀 마시고 지금 틀니 잘 쓰시다가 다음 틀니보험 되실 때 새 틀니 또 하셔서 맛난 것 잘 드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며 덕담을 주고받는다. 어르신들을 위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오늘 또 하루를 힘차게 살아간다.

 

할아버지 웃음소리

 

몇 개 없는 게 대수냐
없는 대로 잇몸으로 사셨다
세월의 무게 대부분 사라져
다 살았으니 필요 없으시단다
씹기 불편하고 귀찮으시단다
줄어드는 자존감 커지는 상실감
잃어버린 건강 찾아드릴게요

 

웃고 감추기만 한 아픔
이제야 훌훌 털어 내신다
제대로 씹는 게 소원이시란다
다시 찾은 삶의 의욕과 희망
빈 곳 모두 채워 드릴게요
내어놓기도 채우기도 하시며
마주하며 애써 웃으셨다

 

잇몸으로 웃으시던 할아버지
간밤에 조용히 떠나셨다
다 채워드리지 못한 아쉬움
어깨 툭툭 되레 위로하신다
움푹 패인 입가의 미소
잘 씹겠다며 헐헐헐 웃음소리
이젠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