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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minds

시론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4년 성탄절에서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포로수용소에서 일주일간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특별히 이 기간 동안에 사망률이 더 증가한 이유가 가혹해진 노동조건, 식량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문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다가왔어도 기대하는 일이 생기지 않자 용기를 잃었고, 결국 절망감에 빠진 것이다. 삶의 희망이 없어지니 생에 대한 의지가 사라진 것이다. 이토록 삶에는 의미가 필요하다.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한다. 의미를 추구하다 보면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나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게 되는데 바로 그 간극이 긴장인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50년 가까이 개업의로 살면서 20여권의 저서와 수많은 위대한 논문들을 남겼다. 30세에 개원을 하였고, 66세에 상악암(maxillary cancer) 수술을 처음 받은 이후로 그 합병증으로 발성 부자유와 청력 감퇴로 평생 고통 받았다. 그 사이에 사랑하는 딸 하나가 병으로 죽었고, 누이동생 넷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는 암이 재발되어 83세에 죽을 때까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환자들을 돌봤다. 그의 성격은 철저하고 꼼꼼하고 성실해서 환자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하루의 모든 면담 내용을 일일이 기록했다고 한다. 단조로울 수 있는 일상이었지만, 그의 삶에는 늘 긴장감이 있었던 것이다.


1999년도에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지난 100년간 한 세기를 빛낸 가장 위대한 사람을 세계 석학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첫 번째 사람이 바로 프로이드였고 두 번째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3대 사상가가 니체, 칼 마르크스, 프로이드 순이었다. 프로이드는 글도 잘 써서 작가도 아니면서 괴테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그의 연구는 예술, 인문학, 생물학 등 다양한 인접학문에 결합되어 활용되었다. 그는 진득함과 성실함으로 why of life가 분명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얼마 전 코로나로 연기된 4대 메이저 대회중 하나인 제 84회 마스터즈 골프대회가 있었다. 세계 모든 프로골퍼들이 가장 우승하고 싶어 하는 그 대회를 만든 것은 보비 존스라는 아마추어 골프 선수 출신의 변호사이자 사업가였다. 그는 어려서 몸이 허약하였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운동이 골프였다.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그는 골프역사상 전무후무하게 한 해(1930년 시즌) 동안 그 당시 4개의 메이져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시즌을 치룬 해에 28세의 젊은 나이로 미련 없이 골프계(competitive golf)를 떠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1930년 초반에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가 영국 베팅업체에 50 대 1의 확률로 그 해 4개 메이져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것에 베팅하였단다. 결국에 그는 6만 달러(현재 시세로 대략 10억 원)를 벌었다.


보비 존스는 조지아 공대와 하바드대를 거쳤으며, 최고 수준의 골프 실력을 가졌으니 요샛말로 소위 “엄친아”였다. 그의 골프 인생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라운드 도중 화가 나서 스코어 카드를 찢고 대회를 중도 포기한 적도 있을 만큼 좌절을 겪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골프에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루었고, 더 화려하게 부와 명예를 거두며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최고의 전성기에 있었지만, 프로로 전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돌연 박수칠 때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 것이다. 그의 은퇴를 두고 갤러리(골프 관중) 공포증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었지만, 나중에 그는 고백했다. 본인은 인생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가족, 두 번째가 변호사로서의 직업, 그리고 마지막이 골프였다고.

 


골프는 “선수가 곧 심판”이기도 한 유일한 스포츠인데,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25년 US Open 경기 도중 헤저드 구역에서 샷을 준비하는 데 공 뒤의 풀에 골프채가 조금 닿아서 공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나중에 스코어 카드를 제출할 때 스스로 1 벌타를 부여받았다. 결과적으로 그 한 타가 공동 선두를 허용해서 그는 연장전에 나갔지만 우승에 실패했다. 한 기자가 그의 행동을 칭찬하자 그는 “사람이 은행을 털지 않았다고 칭찬받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당연한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래서 우승자보다 더 유명해졌다. 1926년 US Open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퍼팅을 준비하는데 강풍이 불어서 공이 바람에 밀려 퍼터에 닿은 것이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이번에도 그는 망설임 없이 스스로 1 벌타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승을 하였다. 그 이후로 미국골프협회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스포츠맨십상을 수여하고 있다. 주변과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자기만의 두둑한 배짱과 소신을 가진 그는 골프계의 위대한 전설(Legend)로 남아있다. 그도 why of life가 분명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성탄절이 왔는데도 집에 돌아갈 수 없었지만, 다음 성탄절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과 희망을 마음속에 계속 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마 살아남았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진득하게 기다릴 시간이 점점 없어진다. 한 가지 생각을 꾸준히 유지하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런 상황과 주변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려면 나만의 why of life를 지켜나가야 한다. 노벨상 후보 추천도 사양하고 개원의로서 진지함, 진득함, 긴장감과 성실함으로 평생 한 자리를 지켜낸 프로이드처럼. 한타 한타가 아쉬운 우승 경쟁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1 벌타를 부여할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가진 보비 존스처럼. 이들이 위대한 이유는 자기가 놓인 상황에 구애받거나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항상 great mind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니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더 생긴다. 위인들의 삶을 읽으며 느슨해지려는 마음을 다 잡고, 나 자신과 자주 만나서 나의 why of life는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보자. 어지러운 세상 뚝심과 소신을 지키며 더 멋진 삶을 다듬어 나가자고 내 자신에게 다짐해 보자.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If we possess our why of life, we can put up with almost any how.”      
<프리드리히 니체>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