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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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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게는 외조부께서 돌아가신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임종이 좋을 이유가 있겠습니까마는, 많은 분이 ‘호상’이라 표현하는 죽음이었습니다. 아마 자손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구순에 이르러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병치레가 거의 없으셨고, 무엇보다 입원 이후에도 짧은 기간 병시중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한 상황에서 자녀들이 임종을 지킬 수 있었기에 더욱이 그 마지막이 슬프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 할아버지는 엄청난 고집쟁이였습니다. 한번 고집을 부리시면 어떤 말로 만류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는데, 특히나 젊음을 되찾는 일에 더 각별했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젊음의 묘약을 종류별로 사 모으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광고에 나온 병원을 찾아다니며 굽어진 허리를 똑바로 펴게 해줄 화타를 찾아 헤매기 바빴습니다.


이런 할아버지가 다단계 아주머니들에게는 무척이나 귀한 고객이었겠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수시로 호통을 쳐대는 진상 환자에 불과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뵈던 날도 제게 “병원 원장에게 가서, 나 모시기를 제 부모 모시듯 하라고 전해라.” 고 유언을 남기실 정도였으니까요.

 

한번은 제게 전화가 와서, 치과를 여러 군데 돌아봤지만 다들 틀니를 하라는데 실력이 형편없는가 보다고, 임플란트를 할 수 있는 치과를 찾아내라는 겁니다. 당시 치전원 학생에 불과했던 저는 임플란트를 심을 수 없는 이유를 유추하여 소상히 설명했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시내의 한 치과에서 상악 전치부 임플란트 브릿지를 해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해당 보철물은 고정력을 얻는 데에 실패하여, ‘착탈식 연조직 임플란트’ 가 되고 말았지만, 치료 과정 전반에 대한 할아버지의 만족도는 상당했습니다.

 

무엇이 그리 만족스러웠는지에 대한 할아버지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어눌한 발음을 끝까지 들어주었고, 귀에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말하며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 알고 보니 그 치과의사가 먼 친인척이었더라는 것이지요.

 

진상 노인의 동네 아무개의 삼촌의 친구의 아내의 조카사위의 아들이 되어, 친절하게 끝까지 그 하는 얘기를 놓치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는 요즈음, 누군가는 치료에 대한 전문가적 소양이 없다 비난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진상 할아버지는 그렇게, 어떤 원장님이 만들어준 착탈식 임플란트와 함께 먼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