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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과 벌

시론

요즘 본의 아니게 맡고 있는 직책 때문에, 정부 기관의 실무 담당자들을 만나 회의를 할 때가 있다. 치과 진료제도 개선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때, 말미에 필자가 묻는 질문은 단 한 가지이다. 쉽지 않은 진료를 잘 해온 치과의사에게 ‘상’을 주는 게-예를 들면 해당 수가의 인상과 같은- 시술한 치과의사들의 수고에 조금이라도 보답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요청을 하면, 그 자리에 배석한 정부 기관의 배석자들 다수가 난감함을 표시한다.

 

그 분들과의 논의가 길어질 가능성이 크고, 또 그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닐뿐더러, 나이든 위원 한 명(필자) 때문에 회의가 늦게 끝날 것 같기도 하여, 치과의사들에게 피해만 없도록 하는 선에서 확인을 하고 자리를 빠져 나오곤 한다.

 

우리는 정부기관과 대화 시, ‘상’을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추진’이나 ‘치의학산업연구단지 설립 추진’과 같은 일이 성사가 된다면, 아마도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정부 입장에서는 ‘상’을 주는 셈이 될 것이다. 현재 이 정부의 ‘치과의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이러한 ‘당연한 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지는 의문이 되면서도, 이런 사업이 모든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꼭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화학에서의 ‘평형 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상’에 상응하는 ‘벌’ 또는 ‘불이익’이라는 게 반드시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다. 20년 전 쯤 어느 치과의사들간의 모임에 오신 대학 선배님이 본인의 치과에서 진료받은 근관치료 환자에게 오후 내내 환자의 불만 사항을 듣고 시달리다가 오셨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앞으로 치과의사들이 근관치료를 못하게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넋두리를 하신 적이 있다.

 

그 당시 우리들은 다 함께 씁쓸한 미소를 지었지만, 필자의 속마음은 참으로 복잡했던 것 같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근관치료가 분명히 필요하면서도 치과의사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치료이고, 근관치료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름 표준화된 진료 술식대로 진료를 하여도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는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갑자기 들어서였다. 우리는 특정 환자로부터 불만을 듣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이를 우리의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벌’로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 즉, 앞서의 근관치료와 같은 치료에 대해 저수가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악조건을 무릅쓰고 근관치료를 해 내면서 치아 하나라도 살려보겠다고 하는 치과의사들에게 ‘상’으로 격려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번 치협 집행부의 노력의 결과인지, 2020년 11월부터는 근관치료에 대한 급여 혜택의 폭이 다소 개선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아직도 근관치료를 하루에 1회 이상을 시행하는 치과의사들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할 것이다.


앞서의 대학 선배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평상시에 필자와 같은 보통 수준(?)의 실력을 갖춘 치과의사들은 본인이 행한 진료의 결과로 인해, 이미 ‘치과의사의 면허’를 취득한 순간부터 ‘벌’을 받아 왔다고 생각된다. 이제 머지않아 필자도 “바깥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가까와지는 것 같다. 선배들의 정년 준비가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현실감이 든다. 필자의 전공을 고려하면, “보수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과목들이 떠오른다.

 

이 나이에 새롭게 “임플란트”나 “치열교정”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은 들지만, 본인 전공과목을 포함하여, 앞서의 두 과목 이외의 ‘나머지 진료’를 숙달하여, ‘바깥 세상’으로 복귀했을 때의 어려움을 줄여야 하는, ‘지금은 없는 미래의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무쪼록 “벌”보다는 “상”을 받을 수 있는 진료를 하고 싶지만, 필자가 현 근무지에서 “신선 놀음(?)”을 하는 동안, 세상도 많이 변하고, 환자들의 품성도 많이 변했고, 동료들의 마음 씀씀이(?)도 필자가 개원했던 1990년대 같지 않다는 후배들의 조언이 가슴을 누르는 느낌이 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