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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얼굴 - 러시모어의 위인들 3

임철중 칼럼

고2 영어교과서에서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Nathaniel Hawthorne, 1850)’을 읽으면서 러시모어의 조각이 떠올랐다. 필자는 보글럼의 네 대통령 조각 계획이, 붓다·노자에 필적하는 은유의 작가 호손의 단편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믿는다.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마을을 벗어나 보지 못한 어니스트에게, 인디언 부족(다코타는 본래 Sioux족의 땅) 대대로 전해오는 전설은 하나의 신앙이었다.

 

전설은 언젠가 이 마을에서, 뒷산 절벽에 자연이 빚어놓은 거대한 석상과 닮은 지도자가 태어나리라는 예언이었다. 성실한 전도사로 늙어가는 동안, 크게 이름을 떨친 마을 출신 재벌·장군·정치가들이 숱하게 다녀갔지만, 어니스트는 석상과 닮은 인물을 찾지 못한다. 어느 날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한 시인이 주민들에게 연설을 하다가, 마침 석양에 비친 주름진 백발의 어니스트를 바라보며 외친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씨야 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어니스트는 시인과 함께 집에 돌아가면서, 여전히 나보다 더 현명하고 착한 사람이 큰 바위 얼굴로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성실과 정직과 겸손의 예찬이다.

 

필자는 칼럼 ‘큰 바위 얼굴’에서(2000. 5. 19), 러시모어에 오를 다섯 번째 인물로 고 레이건 대통령을 점치는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미국은 케네디 암살 이후, 존슨이 월남전쟁의 수렁에 빠지고, 닉슨의 워터게이트 탄핵과 무력한 포드에 이어, 자신을 절대선(絶對善)으로 착각한 못난 카터의 경제·외교적 실패로, 최악의 상태에 몰렸다. 이 무렵 미국을 되살려낸 인물이 영화배우 노조위원장 출신 제40대 레이건 대통령이었으니, 가히 미국 현대사의 거인이라고 하겠다. 경제적으로 작은 정부·규제 완화를 목표로 하고, 항공관제사 파업에 13,000 중 11,350명을 복직 불가 공직 취업 영구금지로 파면하고, 노조에 벌금 부과로 강성노조를 뿌리째 뽑았다.


일·영·독·불 4개국 재무장관을 플라자 호텔로 불러 상대국 통화의 평가절상을 압박하여, 만성 적자이던 미국무역의 반전에 성공한다. 일본에는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이요, 결과적인 3저 현상(저금리 저 달러 저유가)은 전두환 5공의 경제 기적에 (소득 3배 성장) 일등공신이었다. 중화학공업으로 방향전환에 고전하던 대한민국이, 레이거노믹스 덕분에 부활한 것이다. 레이건의 공은 미·소 관계에서 더욱 빛난다.


고르바초프를 어르고 뺨치며 설득하여, 길고 긴 냉전 기간 자유세계에 공포의 원천이던 악의 제국 소련의 연방해체와 동구권 민주화를 끌어내었다. 결론적으로 위대한 미국을 만들자(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는 대국민 약속을 지켰는데, 트럼프는 이 슬로건을 2016 선거 때 그대로 베껴서 사용했다.

 

시골 대학(유레카 대)을 나온 2급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보여준 인간승리의 역사.  승리의 원동력은 그의 카우보이적 솔직함과, 사람을 끌고 설득하는 친화력(Affinity, Charm)에 있었다. 철의 여인 대처 영국수상(1979-90)과 오랍누이의 애정, 마초 나카소네 일본수상(1982-87)과의 브로맨스, 심지어 적대국 고르비(1985-91)와의 두터운 신뢰와 우정 등, 걸출한 친화력이었다.


두 정상 간의 우정은, 개혁·개방의 선각자 고르비의 노벨평화상 수상(1990)으로 결실한다. 데탕트의 두 주인공이 공동수상하지 못한 이유는? 레이건은 압박일변도인 ‘갑’이었고, 목숨을 걸고 국내외의 완강한 저항을 설득하고 무마해야했던 ‘을’인 고르비의 희생은 정작 수상감 아닌가. 연방해체 이후 극도의 정치 경제적 혼란에 빠진 러시아국민을 응원하고 진정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평화상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요 역할이다. 레이건이 아직도 러시모어에 오르지 못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거셌던 60년대 반전운동의 유산과 네오 콘에 대한 일부 저항감, 게다가 트럼프가 부풀려놓은 국민분열을 소화·봉합하려면, 한 세대쯤 더 지나야 할 것이다. 바로 그 트럼프가 노벨상에 러시모어 등산*까지 넘본다니 할 말을 잃는데, 그나마 트럼프는 과거를 물어뜯지는 않았다. 러시모어의 큰 바위 얼굴은, 우리에게도 가히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하겠다.

                                             

* Poor Loser의 밑바닥을 보인 트럼프는 소원대로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러시모어가 아니라, 미국을 둘로 쪼개고 전 인류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짓밟은, 250년 미국 역사 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