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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과 걍생

스펙트럼

갓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god)을 뜻하는 ‘갓’과 생(生)을 결합한 단어로 매우 생산적이고 부지런하게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미라클 모닝이나 몸짱되기 등 여러 가지 지속적으로 또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들에 도전할 때 취해야할 삶의 태도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젊었을 적 갓생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다보니 갓생보다는 걍생(갓생과 반대로 그냥 사는 삶)을 더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1달 간 너무 일정이 빡빡했습니다. 학회강의, 치과에서의 특별강의, 시덱스 강의, 녹화촬영 강의, 종료과제 발표, 선정되기 위한 2차 발표 평가 등이 몰려 있었습니다. 수업도 종강이 안 된 과목들이 3개 정도 있었고, 역학조사 관련 업무에 줌 회의, 회의, 저녁 약속들이 줄줄이 있다 보니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할 시간들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아 거기에 야근도 편히 못가고 집에 가서 육아도 해야 되네요. 집에 가도 편하게 업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밀린 일들 아니 밀리고 급한 일들(밀린 일들은 원래 많습니다)을 해야 될 시간은 유일하게 새벽이 되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작년에 해봤던 미라클 모닝과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으면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강제 갓생 모드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하면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 게으르지만 갓생 모드가 아니면 X되버리는 사태가 발생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겁니다. 

 

그런 점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매일매일 마감과 같은 것들이 오고 그것을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시 강제 갓생 모드라고 봅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강제 갓생 모드로 살아보니 뿌듯함과 긴장감이 공존하니 어떨 때는 성취감의 도파민이 분비되다가 어떨 때는 불안한 마음 드는 기분이 뒤섞여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가장 홀가분하고 도파민이 많이 분비될 때는 급한 마감을 넘기고 하루 이틀 정도 여유가 생길 때 였습니다. 이러려고 스스로를 괴롭힌 건가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급한 일들이 꽤 넘어갔기에 갓생 모드에서 걍생 모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원래 사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처럼 매일 갓생은 못하겠지만 필요하면 일시적인 갓생 모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갓생 모드에서 오는 성취감도 있지만 갓생 모드에서 걍생 모드로 넘어갈 때의 행복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아마 학생 때 시험이 끝나갈 때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경계해야할 것은 갓생이 아니라 번아웃으로 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할 때는 갓생이 될 수 있지만 수동적이고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는 과로가 됩니다. 현실세계의 업무들은 자의와 타의가 섞여 있기에 갓생과 번아웃의 경계가 모호하고, 외줄타기처럼 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걍생도 필요합니다. 걍생 모드로 여유를 갖고 반추하면서 지난 삶의 방식이 나한테 맞는지 더 걍생이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베스트셀러 책 “The One Thing”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란 단순히 정적인 균형이 아니라 필요할 때는 한쪽으로 갔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기우는 동적인 균형이 바람직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갓생과 걍생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고 이 비율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요즘은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생각이 덜 듭니다. 갓생을 살아도 고통스럽다기 보다 스스로 강제 갓생 모드를 만들었기에 딴 짓을 안하고 집중하게 만든 상황을 인정합니다. 이러다가 변덕스러운 마음에 ‘인생은 고통이다 5’칼럼을 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고통이 1도 없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고통도 있습니다(지금 이 글을 쓰기 전에 분명 그랬습니다). 그래도 마감일을 설정했기에 강제로라도 하게 되는 환경에 감사하다는 간사한 생각이 듭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