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특별기고] 치과계의 유전자 코드 : 다음세대의 모습/ 김 영 호

특별기고 / 김 영 호  삼성서울병원 교정과장


치과계의 유전자 코드 : 다음세대의 모습

 

문득 연구실 밖으로 비온 후 맑아진 하늘을 보다가 그 아래 자라나는 나무들의 흔들림을 봅니다. 예전에는 그저 보기 좋다는 느낌으로만 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중년이 되면 저 나무들도 어디선가 생명의 근원인 씨앗을 받아 이곳에서 한 세월을 번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사색의 범위가 넓어지고, 언젠가는 저 나무나 우리들이나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그 후는? 물론 어린 나무들과 우리의 자식들이 자라나고 있지요.


생명의 순환, Circle of life. 디즈니의 유명한 만화 영화 ‘라이언 킹’에서 어린 사자 심바가 어느덧 강한 청년 사자가 되고, 한 세대의 왕이었던 아빠 사자는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어 자식을 바라보는 장면처럼 개체는 사라지지만 생명은 유전자의 형태로 전달이 되어가지요.


사람은 대략 30년이란 시간을 한 세대로 하여 자식을 낳고 건강히 키워 자신의 유전자를 전수합니다. 어린놈이 커서 뭐가 될지는 몰라도 모든 부모는 이 아이가 자라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우리 치과의사처럼 전문 직업을 가지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부모처럼 치과의사가 된다면 미래에 어떤 모습의 직업인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이에 대한 답을 위해 두 가지 가정을 해봅시다. 첫째는,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의 자녀 모두가 공부를 잘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100% 치과대학을 들어가서 현재 치과대학 1학년이나 2학년입니다. 둘째는, 전문직의 한 세대의 기간을 편의상 20년으로 가정해 우리의 자녀들이 20년 후에는 사회의 중견 치과의사로서 활동을 할 것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100% 치과의사들의 자녀인 학생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치과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살아가며 부모인 우리 중견 치과의사들이 만들어가는 치과계의 영향력 속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성장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람은 자식에게 ‘피의 유전자’를 전달하지만 전문가 집단은 그 고유의 ‘전문가 유전자’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실제로 느끼든 못 느끼든 지금 살아가는 치과의사로서의 일상이 예전에 졸업한 상아탑인 대학 안에서 배운 ‘학문의 유전자’가 사회생활에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지요. 가만 보면 사람이 대개 배운 대로 살아가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 우리가 규정해가는 치과의사상을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해 가급적 그 안에서도 확실하게 전문적인 분야를 하나 정해 공부하기를 원할 수도 있겠지요. 세계적인 학자를 꿈꾸는 아들놈이 학계의 선두 그룹에 있으려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야 하는지 동기 중에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기도 하고 유학비 걱정을 하기도 할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자녀들이 밥 벌어 먹고 사는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이 사회에서 돈만 벌고 자기만 잘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전문인으로서 세계적인 위상을 가지고, 지역 사회에서 모범적인 사회 활동으로 존경받으며, 자신의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꾸준한 노력으로 연구도 하며, 나이 들면 주위에서 자녀들의 주례도 부탁 받는 전문가 그룹이 되기를 꿈꾸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우리의 자녀들이 그럴 수 있으려면 지금 부모인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자명해집니다. 대학을 졸업해 전문가를 꿈꾸면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회를 충분히 열어 놓아야 하고, 이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제도적 개선을 해야겠지요. 무엇보다도 고(故) 이규태 선생님께서 한탄하신 우리 민족의 단점 중 ‘독 속의 게’처럼 위로 올라가 독을 벗어나려는 게를 다른 게들이 잡아서 떨어뜨리는 ‘모두 하향식’의 모습에서 ‘모두 상향식’의 모습으로 바꾸어지지 않는 한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 우리가 그나마 지키고 있는 위상보다 훨씬 추락한 사회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오다가다 만나는 위층의 미장원 원장님, 1층의 슈퍼 사장님과 큰 차이를 못 느끼는 ‘치과계 유전자’를 전달해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옆 집 ‘못난이 형제들’처럼 다른 전문가 집단과 사회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목표는 아니겠지요?


비상을 꿈꾸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할까를 심각히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미래를 예비할 때입니다. 치과계의 한 세대를 책임지고 있는 리더들과 전체 구성원들의 마음과 결정에 따라 미래의 치과계 자녀들이 어느 정도로 ‘인정받고 존경 받을 유전자’를 받아 생을 살아가느냐가 달린 것이지요. 지금 이 시간에 20년 후의 치과계 자녀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그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