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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나를 성장시키는 재료


종|교|칼|럼|



혜원 스님
<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나를 성장시키는 재료

 

오늘은 오랜 만에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저희 선원은 도심에 있는지라 건물들 사이로 뉘엿뉘엿 스러져 가는 석양을 어쩌다 한번 흘깃 볼 수 있기는 해도 제대로 해가 지는 광경을 보기란 구조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도 동쪽으로는 관악산과 삼성산이 있어 가끔은 산위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절로 아! 하는 짧은 찬탄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출가자의 모습에서 바람처럼 물처럼 살아가는 초연함과 인생을 관조하는 여유 이런 것을 주로 떠올립니다. 사람들에게 주로 듣는 말이 “ 스님들이 뭐하시느라 바쁘신지요?” 하는 물음과 병원에 갔을 때 꼭 듣게 되는 “스님들도 아프신지요?” 입니다. 아마도 그런 초연함이나 여유로움을 출가자에 대한 고정 이미지로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저희 선원은 도심 속의 사찰이다 보니 관리해야할 건물은 크고 오가시는 분들은 많으며 진행해 가야할 사업도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행사들은 차치하고라도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오늘 좀 바빠서요.” 하는 말이 인사처럼 붙어나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느니 세간에 있었으면 돈이라도 벌지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희 한마음선원에서 하는 공부는 ‘생활 속의 불법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신도님들은 신도님들대로 출가자들은 출가자들대로 자신이 처해있는 현 상황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재료로 삼아 답을 찾아가는 공부가 바로 생활 속 마음 공부의 중요한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바쁜 것은 몸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꼭 바쁘고 힘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은 환경에 이 마음이 지배되어 처해있는 환경이 힘들수록 내 마음도 힘들어지게 되고 불행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내 환경이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그렇게 따라가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통찰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 항상 자기 마음의 주장자를 쥐고 줏대있는 모습으로 여유롭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처해있는 어려움을 오히려 내 인생 공부의 재료로 삼았기에 그 어려움에 휘달리지 않고 불행이라는 환상의 물거품을 걷어내는 참지혜가 나와서 나를 더 현명하게 이끌어주니 나의 물질적 상황에 속아서 허둥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한가로이 쉬고 있는 어부에게 어느 부자가 한심해하며 말했답니다. “당신은 이렇게 놀고 있을 여유가 어딨소.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고기를 잡아 큰 배도 사고 그래야 하지 않겠소?” 어부가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그래야 인생을 편안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지 않겠소.” 하고 부자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어부가 말했답니다. “당신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그 부자의 모습에서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들의 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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