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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섬에서

종|교|칼|럼| 삶

 

양들의 섬에서


세계 지도책의 북유럽쪽의 아틀란틱해협의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의 중간 지점에 눈꼽만한 점으로 밖에 표시되지 않은 페로스제도 또는 페로에 제도 라고 씌여진 나라에 발을 디딘지 올해  4월에 7년이 되었습니다. 매년 경찰서에 가서 거주 연장신청을 하러 다니며 끈질기게(?) 살아 온 덕분에 올해는 영주 거주권을 얻었습니다. 연 초마다 서류를 챙겨 경찰서를 드나들 일이 없어져서 얼마나 기쁜지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 본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9년 전에 종신토록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어마어마한 서원을 하면서 이곳 페로에 제도로 파견을 받았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나의 나라를 떠나 그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 섬은 영어권에 더 가깝지만 우리 수녀원의 행정 구역상 불어권에 속하여 맨 먼저 브르셀에 있는 수녀원에 도착하여 불어를 배운 지 1년 반만에 저를 기다리는 페로에 제도로 향했습니다. 자그마한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전 어느 사막의 한복판에 도착한 줄 알았습니다. 드넓은 광야에 나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고, 땅은 무척이나 목마른 듯  메마르다 못해 갈라져 있었지요. 어리둥절해 있는 나의 모습을 알아 본 듯, 함께 동행한 수녀님은  수녀님들이 사는 수도 ‘토르사븐’에 다다르면 나무들을 볼 수 있다며 위로하더군요.


이곳은 화산섬 18개로 이루어진 제도로 덴마크에 속하는 자치국입니다. 총리와 국회, 자기나라의 국기와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18개의 섬을 합친 면적이 우리나라의 제주도보다 작고, 이 섬의 전체인구가 우리나라 한 군의 군민정도이지만 점점 많은 집들이 지어지고 있는 걸 보면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여기서도 국제결혼을 하여  이곳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자주 만납니다. 


이곳의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풍경 중의 하나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산에 비 바람과 돌 밭에 잘 견디어내는 아주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고 그 위에 양들이 먹이를 찾아 뜯어 먹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페로에 제도’라는 이름이 ‘양들의 섬’이듯이 이곳은  양들의 왕국입니다. 차를 몰다가도 양들이 유유자적하게 거리를 거닐고 있노라면 차가 멈추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요. 양, 닭, 거위, 오리 때로는 바다의 갈매기까지 벌판에 날아와 함께 지내는 천상의 장면도 봅니다.


이곳에 ‘파견된 자’로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이곳에 사는 이들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지요. 이 섬이 역사상 처음에는 노르웨이 왕조에 속하였기에 노르웨이의 옛 말이 페로에 전통 춤(많은 군중이 팔과 팔을 끼고서 원을 이루어 발구름으로 리듬을 타며 추는 춤)과 함께 불리워지는 긴 노래에 남아 있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덕분에  지금의 페로에어가  존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만 56년을 넘게 살아오신 87세의 수녀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외국인들을 위한 야간학교에 다니며 재미있게 언어를 배웠습니다. 덕분에 많은 외국인들과도 친구가 되어 연락을 주고 받으며 함께 조금씩 페로에 제도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파견된 자"…수 없이 많이 들어 온 단어이지만, 유난히 오늘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음미하게 하네요. 단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지 싶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늘로 부터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파견을 받아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가정에, 한 사회에, 한 나라에 그리고 이 세상에 각자 자신의 소명을  가지고 파견된 자로서 가정의 가문을 배우고 사회의 풍습을 배우고 나라의 전통을 배우고 세상과 우주의 신비와 조화를 배우고 익히면서 인간으로서의 소명을 찾아 이루어가는 것이지요. 자신만의 고유한 소명을 찾아낸다는 것,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찾아 낸 소명을 이루어간다는 것 또한 쉽지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는 첫 순간부터 울음을 터트리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에는 두려움이 엄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서는 쉽지않는 일, 가정과 사회, 나라와 세상이 서로 도와 조화를 이루고 우주의 신비를 존중한다면 한결 더 쉽게 풀어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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