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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밥과 반찬

종|교|칼|럼| 삶


밥과 반찬


지난 겨울, 한 식당에서 얼큰한 동태찌개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수녀들이 그런 음식점을 가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외출이 길어지고 밥 때가 지나 배가 고파서 가볍게 먹을 곳을 찾는데 쉽게 찾을 수가 없어 들어간 곳이었습니다. 많이 추워서 그런지 따뜻한 동태찌개가 얼마나 맛이 있던지요. 저는 부산이 고향인데 어릴 때 어머니가 자갈치에서 동태를 사와 끓여 주시던 그런 맛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동태찌개 한 숟갈에 행복해 하면서 먹고 있는데 옆자리의 사람들이 밥을 반 이상이나 남기고 나가는 것을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다 버려야 되는 것도 문제이고 또 춥고 떨리는 겨울날, 이 맛있는 반찬과 따뜻한 국 앞에서 얼마나 큰 유혹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몸매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세상 기준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도 안타까웠습니다. 밥을 남기지 말라는 어렸을 때부터의 부모님 가르침이 있어서 밥을 남기게 되면 죄스런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수녀원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떠가서 먹으니까 남기지 않을 수 있는데 식당은 그것이 좀 곤란합니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들이나 자녀들이나 어른들이라 할지라도 군것질을 좋아하거나 밥을 잘 안 먹을 때 누구나 쓰는 말씀이지요. 요즘 관점으로 보면 살찌는 주범중 하나인 탄수화물 덩어리의 밥이 보약인 이유는 가만 생각해보면 밥과 함께 먹는 반찬들 때문이지요. 반찬들이 아무리 맛이 있어도 그냥 그것만 먹기에는 짜고, 맵고, 시기만 합니다. 밥이라는 밋밋한 것이 반찬의 맛을 살려 줍니다. 밥이 오렌지 맛이 나면 오렌지이지 밥이 아닙니다. 밥이 소고기 맛이 나면 소고기이지 밥이 아닙니다. 밥은 밥맛이라는 그 밋밋함이 있어야 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좋고 기쁘고 행복한 일도 있고 괴롭고 슬프고 힘들고 짜증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에 치여 바쁘고 정신없을 때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런 희노애락의 모든 일은 다 양념입니다. 반찬입니다. 삶을 맛있게 만들어 주는 것들입니다.


나라는 인간을 건강하게 존재하게 해주는 영양소들입니다. 하지만 누가 살면서 반찬만 먹겠습니까? 이런 희노애락을 즐기게 해주는 밥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종교가 아닌가 합니다. 예배나, 미사, 불공, 제사를 드리면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장황해 보이는 형식들도 힘들 수 있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지겨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까 의무감으로 그런 예식들을 해치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 예식이 삶의 희노애락을 한데 모으고 조용히 정리하고 감사하면서 삶의 보배를 꿰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힘든 것은 힘든 것대로의 의미를 알게 하여 받아들이게 하고, 즐겁고 기쁜 것은 과급을 조절하여 지나치지 않게 해 주는 것입니다. 주중에 일이나 공부가 많이 힘들었다고 주말에 신나게 놀 것만을 궁리하고 또 그렇게 하면 처음 얼마간은 재밌고 신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좀 허무하다, 뭔가 이상하고 빠진 것 같다, 등등의 생각... 이럴 때는 더 큰 즐거움을 찾아 떠나지 말고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 보고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는 마음의 부름이 아닐까요. 집안 청소도 자주 해 두면 손님 맞이 대청소 때 편하겠지요. 자주하지 않으면 대청소 할때 애먹습니다. 평소에 삶을 정리해 두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사람이 가볍게 보이지 않고 깊어진 모습을 남들이 느끼게 될 것이고 죽음이라는 손님이 찾아올 때 좀 편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밥이 좋다고 밥만 먹으면 밥보, 즉 바보가 되고, 그렇다고 반찬만 먹으면 음식에 금방 물리게 되고 과민한 인간이 될 것입니다. 어떤 성현의 말씀에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양순하라"는 말씀이 밥과 반찬을 골고루 먹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운 여름휴가철을 맞아 몸만 식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식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수영 요한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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