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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터인 물길

종|교|칼|럼| 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내 마음에 터인 물길

 

강물을 따라 걸었습니다. 굽이 돌아 흐르는 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비옷을 입고선 오후 내내 여주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강 길을 따라 난 길을 걸었습니다. 같은 뜻을 지닌 이들이 만나 동무가 되고 함께 걷고 있는 우리들처럼, 강물도 논두렁 밭두렁을 만나 정겨운 듯 출렁대고 작은 산에서 내려온 계곡 물을 맞아들여 굽이쳐 흐릅니다. 그들도 수백 수천 년을 함께한 동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처음에는 함께 걷던 동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마주보며 웃었지만, 걸음을 더해 갈수록 조용해 졌습니다. 강물의 소리를 듣고 싶었고 강물에 몸을 기댄 뭇 생명들의 숨결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생명의 소리들은 내 양심을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숨결이었습니다.


강물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거센 빗줄기를 맞으며 흙탕물에 미끄러져 넘어져도 물집이 잡혀 발걸음이 무거워 몸이 지쳐가도 답답함에서 오는 무게 보다는 가벼웠고, 미안한 마음이 누르는 한숨 섞긴 어둠보단 밝았습니다. 안개 낀 산자락과 굽이 흐르는 강물이, 그 안에 노니는 황쏘가리와 외짝 재두루미가 슬프도록 아름답게 보이는 건 얼마 못가 이 광경을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만히 두어도 좋을 자연,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뒤집어 파내고 시멘트를 바르고 물길을 막아내는 작업을 멀리서 바라보며 인간이 지닌 이기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갈 길을 잃어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물길에 뭇 생명들은 또 얼마나 괴로움에 지쳐갈까요. 그 깊이와 넓이를 모르는 이기적인 마음이 모여 탐욕이 되고 그 탐욕이 모여 폭력이 되고 결국 파괴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여기에는 조화로움도 소통도 없습니다. 오직 힘 있는 자의 거센 욕망과 그 안에 희생되고 죽어가는 힘없는 자의 약한 외침이 있을 뿐입니다. 조용히 들려오는 외침이 무딘 나의 양심을 깨우치게 했고 행동하게 해 주었습니다.


보기에 좋은 것과 편리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행동하는 나의 정당함 안에 자연과 이웃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바라봅니다. 내게 돌아올 당장의 이익과 당장의 위기 극복을 위해 자연과 이웃을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생각과 가치관을 강요하는 폭력을 행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봅니다. 생활 안에서 소통을 위한 작은 노력, 모든 피조물과 이웃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이 모일 때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물길이 터이듯, 어쩌면 멈추어 선 강물을 계속해서 흐르게 할 수 있는 건 내 생각과 가치관을 자연과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폭력이 사라질 바로 그때 물길이 터이게 될 것 입니다. 바로 그때 갇혔던 강물은 자유롭게 흘러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어쩌면 물길을 막고 있는 건, 포크래인과 화물차가 아니라 생활 안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다른 이를 지배하려는 폭력적인 요소가 만연한 우리네 삶의 방식에서 오는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향한 비판과 불평의 소리보다 우선 내 안에서 평화와 조화, 소통으로 폭력적인 요소를 바라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존재로서 수용하며 내 자신만을 위한 탐욕적인 것을 내려놓을 때 내 마음에서 부터 터인 물길은 세상을 향해 흐르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멈추어 섰던 강물도 흐르게 되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강물을 따라 저녁 어둠이 깔릴 때까지 걸었습니다. 강물은 어머니라고 합니다. 많은 생명들을 품어 키우는 어머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강물은 계속 흘러야 합니다. 수천 년을 흐르며 키워온 생명으로 우리는 얼마나 큰 풍요로움을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았는지요. 이 세상엔 필요 없는 생명체는 없다고 합니다. 강물은 그대로 흘러야 강물이고, 산은 그 자리에 있어야 산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움을 위해 오늘도 내 마음 안에 또 하나의 물길을 터고 내게로 흘러오는 일상의 작은 물길을 소중히 맞아들여 생명을 키우는 강물이 내 마음 안에서 쉼 없이 흐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흐르기 멈추고 있는 4대강도 쉼 없이 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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