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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애살수(縣崖撒手)

월요시론

2013년 마지막 12월. 쉬지 않고 달려온 한 해가 아쉽게 저물어 가고 있다.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좋았던 일들도 많았지만 채 이루지 못한 일들은 왜 이렇게 가슴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속에 남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지 모르겠다.


최근 송년회는 연말이 아닌 12월 초부터 시작되는 분위기여서 인지 여기저기서 1년을 마무리 하는 모임으로 부름이 잦다. 송년회 이야기가 나왔으니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그룹의 예가 남다르다. 지난해부터 건전한 사내 음주문화 조성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고, 올 연말에도 임직원의 건강한 송년회를 위한 후속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앞서 실시해온 ‘변화주(酒)도’ 캠페인에 이어 폭음을 유발하는 ‘벌주’·‘원샷’·‘사발주’ 등 3대 음주 악습을 금지하고, 지나친 ‘건배사 제의’도 하지 않기로 했다. 특히 연말이라고 행여 ‘이번 한번만’ 하는 생각에 음주 악습이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음주문화를 좌우하는 부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술로 인해 오히려 좋아야 할 분위기를 자칫 해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


대신 직원들을 일찍 귀가시켜 가족들과 함께 보내도록 하고, 문화활동 같은 술 없는 ‘대안 송년회’를 유도하고 있다.


술로 흥청망청 하며 무의미 하게 다음날 쓰라인 속을 달래다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아닌 가족과 함께 문화활동으로 송년회를 대처하는 모습이 세계적 기업답다.


술과 친해보려 해도 여전히 타인으로 남아있는 필자에게 삼성의 ‘변화주(酒)도’ 문화가 눈에 들어온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부름을 받고 가는 자리야 어쩔 수 없지만 병원 식구들끼리 송년회라도 무언가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자리를 구상중이다.


다사다난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가지만 연초 계획했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비우지 못하고 집착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 때문에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기쁨보다는 후회와 한탄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자는 ‘지식은 채우는 것이고, 지혜는 비울 줄 아는 것이다’고 했듯이 비움에 이르러서 고요해지고, 욕망은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니 요동속에서는 실체를 볼 수 없고, 지혜를 발휘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와같은 의미로 현애살수(縣崖撒手)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벼랑끝에서 움켜쥔 손을 놓으라”는 말이다. 김 구 선생이 거사를 앞둔 윤봉길 의사에게 한 말로도 유명하다. 이 말은 송나라 유명한 선시에 나오는 싯구를 인용한 것인데 벼랑끝에서 손을 놓으라는 것은 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손에 움켜쥔 그 나뭇가지에 연연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 나뭇가지에 대한 집착을 지우라는 것이다. 손을 놓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그 집착을 버리라는 이야기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나무에 원숭이 주먹만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뚫고 그 안은 더 넓게 파 원숭이가 좋아하는 땅콩을 채워 놓는다. 원숭이는 구멍에 손을 넣고 땅콩을 움켜쥔다. 하지만 땅콩을 움켜쥔 그 손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음에도 원숭이는 땅콩을 포기하지 못해 결국 잡히게 된다고 한다.


상대에게 양보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비워야 한다.


일부이지만 크게는 4대 국가기관의 선거개입과 대통령의 하야까지 언급되고 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트윗은 2200만건에 달하지만 1년이 지나도 진전이 없이 답보상태다. 공전을 거듭하던 국회는 한 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여전히 화합과 배려보다는 원숭이의 움켜쥔 땅콩을 놓지 못하는 손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년이 저물어 간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에도 우리들은 땅콩을 놓지 못하는 원숭이 꼴을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 볼 일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찬일
동산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