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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에 오르다

Relay Essay 제2032번째

협회 임원 워크숍차 제주도에 갔다.
내친김에 “거문오름”에 오르게 되었다.
거문오름은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하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반열에 오른곳이다.
제주도 한라산 기생화산중 하나로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 검은오름이라고 하였다.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나 세계 자연문화유산에 지정되었고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여 생태환경 관광문화재로 지정 되었다.

분화구내부에 울창한 수림(樹林)이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띄고 있으며 주위의 검은 용암과 어우러져 더욱 검게 보여 음산한 기운을 띄고 있다. 그래서 신령스런 느낌마저 품고 있다.

탐방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고 탐방 수칙을 교육 받았다. 교사 정년 퇴직 5년이 지났다는 칠십가까이 되는 해설사의 주의사항이 마음을 짓누른다. 산나물과 꽃 나무 등 일체의 채집행위가 금지되고 환경보존을 위해 등산용 스틱, 아이젠, 구두, 우산 등 사용이 금지되고 음식물 반입도 금지된다고 강조한다.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기고 자기마음대로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통제요원과의 사이에 제재를 받고 다툼이 가끔 있다고 했다.

자연을 아끼고 품을줄 모르는 사람에게 탐방길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
초입에 들어서면 삼나무 군락지가 반갑게 인사한다. 20대처녀 다리처럼 쭉쭉뻗은 삼나무가 시원시원하다. 내뿜는 공기도 싱그러워 벌써부터 상쾌해진다. 해설가 선생은 칠십나이에도 어찌 빠른지 젊은이도 뒤따를수 없다. 숨쉴 겨를도 없이 내달려야 한다. 다람쥐처럼 빠르고 발에 모터를 단 모양이다. 사람의 습관과 평소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나이와 상관 없다. 자연과 더불어 숨쉬고 달리는 것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말해주고 있다. 젊은 치과의사들도 힘들어하는걸 보니 평소 진료실을 떠나 체력관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삼나무 숲을 지나 허브향 냄새가 나는 나뭇잎을 비벼대며 냄새 맡기를 권하는 해설가의 설명에 냄새 맡으랴 따라 걸으랴 정신이 없다. 어떤것은 검은 짙은향, 어떤것은 얕은향, 에비오제 냄새 등 다양하다. 천천히 나무 이름도 꽃이름도 관상하면서 걸었으면 좋겠는데 산길 5.5km 분화구 코스를 2시간 30분에 탐방하려니 시간에 쫓기는 모양이다. 여유가 없다. 잠시 숨돌리며 찔레꽃 군락에서 찔레 가지에 마치 사람이 침뱉은 모양처럼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안에 벌레가 있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육지에서 찔레꽃을 많이 보았지만 이런 모습은 생전 처음이다.

잠시후 거문오름 전망대에 오른다. 오름전체를 볼 수 있다.
화산이 폭발해 분화구에서 솟아오른 용암이 흘러 바다쪽으로 흘러내린 용암동굴계 전체를 한눈으로 볼 수 있다. 10여개의 동굴로 이루어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만든 화산 분화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분화구를 제주도에서는 “굼부리”라고 부른다. 분화구 내부에는 알오름이라는 작은 오름이 있다고 한다.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분화구 내부로 내려오면 곳곳에 숲과 자생식물과 새들의 울음소리가 어우러져 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오름의 숲과 숲속을 빛과 소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듯하다. 자연이 정신과 마음을 맑게 한다. 구멍뚫린 검은바위를 가슴에 감싸안고 자기들끼리 뿌리를 뻗쳐 공생하며 물과 흙을 찾아 수백미터까지 뻗는 뿌리들의 생존 전략은 하느님의 신비다.

도중에 만난 천남성 군락지에서의 설명은 우리를 섬칫하게 한다. 천남성은 사약(賜藥)으로 사용하던 독초라는 해설가의 설명에 움찔해진다.

넓은 옥잠화잎처럼 생겼으며 연초록의 풍성한 이파리가 풍요롭게 나풀거리고 여인의 치마를 들추듯 넓은 이파리를 들추면 마치 손을 쥔듯한 꽃잎이 있고 이 꽃잎을 들추면 코브라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모양의 꽃수술이 보인다. 음침해 보인다. 이렇게 깊이 감추면서 벌들을 유인하며 꽃수술 밑에 꿀이 있어 아래까지 벌들을 유인해 꽃가루받이를 완벽하게 해내는 응큼한 녀석이다. 보기에는 탐스럽고 교묘하지만 아주 독한 녀석이다. 잘 기억했다 조심해야할 풀이다.

천남성 군락을 지나면 짙은 숲속에서 새들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깬다. 먼저 꿩꿩하고 육지에서 듣던 꿩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 육지것보다 훨씬 힘이 있어 보인다. 때로는 휘익 휘익하고 휘파람 소리도 들린다. 사람의 발소리에 놀라 적이 침입했다는 신호를 자기 동료들에게 전하는 제주 휘파람새 소리다. 제주 대표적 텃새이다. 때로는 고운 노래로 배우자를 유혹한다. 꼬리긴 오색 딱따구리 소리도 들린다. 해설가가 준비한 새소리 녹음을 틀어놓으니 새들이 날라와 나무숲 사이에 잠깐씩 비치며 어른거린다. 숲사이로 어른거리니 정확한 형태는 보기 힘들다. 희귀조인 팔색조도 산다는데 볼 수 있는 행운은 없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금새우란 자생지에 맞닥뜨린다. 새우란은 뿌리모양이 새우처럼 생겼다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노란꽃이 10여개정도 피여있어 마치 노란저고리 입은 새색씨처럼 우리에게 인사하며 하늘거린다. 우리는 너희들을 기억하고 지나지만 너희들도 우릴 기억할 수 있을까. 숲의 모든 생명은 향기로 작은 말을 한다. 풀도 바람따라 누웠다 일어설때마다 향기로 인사한다.

다음 스케줄 때문에 시간 맞추느라 서둘러 탐방 마지막길에 이르니 정신과 마음은 맑아지고 오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제주도 전역에는 거문오름과 같은 오름이 약 320여개 있다고 한다. 서귀포에서 개업하다 은퇴한 대학동기가 은퇴후 이곳 제주 토박이들과 오름 탐방하는 맛에 산다고 하니 부러울 뿐이다.
제주도에 여러번 왔지만 오늘처럼 바람 없고 비도 없는 청명한 날을 만난 기억도 별로 없다.
또 색다르게 체험한 탐방길은 행복했다.

무엇을 보았느냐 보다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느냐가 중요하다.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변영남 협회사 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