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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와인이야기

Relay Essay-제2036번째

와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로맨틱한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그 만큼 우리 일상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 여겨지고, 한두 번 접해 본 사람들조차도 ‘나와는 안 맞는 술이다’라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나 역시도 소주와 맥주에 20여년을 길들여져 왔고 와인은 관심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생일을 맞아 조그만 레스토랑에 갔다가 추천해 준 와인을 한잔 곁들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스테이크만 먹기가 좀 아쉬웠던 차라 벌컥 한 모금 들이켰다. 떨떠름하기도 하고 묘한 향도 나는 술이 스테이크랑 너무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참 신기한 경험을 하고 얼마 후 크리스마스를 맞아 뭔가 특별한 게 없을까 하다가 동네 주류백화점엘 갔다. 아는 게 없으니 점원에게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원 왈 “크리스마슨데 샴페인 어떠세요?” 그 말에 예쁜 상자에 담긴 샴페인 한 병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예쁜 상자가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시작된 내 와인 사랑은 어느덧 4년이 되어가고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호회에 얼굴을 내미는 정도가 되었으니 와인과의 인연은 참 오묘하다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내 와인의 지식이 풍부하다거나 소믈리에 같은 혀를 가졌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와인을 가까이 하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술을 마셔도 아내가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가장 큰 장점이다.) 소주나 맥주를 마실 때 자주 다녔던 음식점들은 기념일에 가긴 좀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면서부터 기념일에 가족들과도 충분히 갈 만한 음식점의 리스트가 풍부해졌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게다가 만취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도 좋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취미생활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취미활동은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면 더욱 좋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인데, 와인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취미 중의 하나다. 또한, 지금 ‘외로운’ 대한민국의 40·50대 남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다’라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얘기도 나누고, 자녀들과 얘기도 나누고, 아내와도 얘길 나눠야 한다. 와인을 한 병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보면 어느새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2년 전 개업할 때 치과이름을 놓고 고민하던 시절, 문득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 론(Rhone)지역의 와인 도멘 페고의 뀌베 다카포(Domaine du Pegau Cuvee Dacapo)였다. ‘처음으로 돌아가라’라는 의미도 좋고 해서 현재 치과의 이름으로 따왔다.

비싼 와인이 아니라도 좋다. 오늘밤, 치킨 하나 시켜놓고 가족과 함께 샴페인 한 병 따 보는 건 어떨까?
 정지웅 다카포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