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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의 미라를 치과에 전시?

권 훈 원장 ‘치과의사학 영국여행’ 강연 흥미
영국 치의학 선구자, 박물관, 에피소드 소개

"영국 헌터박물관에 가면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쓰던 틀니가 있습니다. 틀니의 구개부 플레이트를 많이 삭제하여 구개와 입천장 사이에 공간이 보존되도록 제작되어 특이한 형태임을 알 수 있는데요, 이건 처칠의 혀 짧은 소리(lisp)를 유지하기 위해 제작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을 읽듯 자세한 설명에 곁들여 직접 찍은 사진을 공개할 때마다 좌중은 작은 탄성을 뱉었고, 눈빛에는 호기심이 어렸다.

매 여행 때마다 세계의 ‘치의학 궤적’을 밟아, 그 흔적들을 국내에 소개했던 권 훈 원장(광주 미래아동치과)이 지난 6일 대한치과의사학회 학술대회에서 ‘치의학으로 떠나는 영국여행’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 영국 최초의 여치의, 협회장되다

권 원장이 처음으로 호출한 치과의사는 릴리안 린제이(Lilian Lindsay 1871~1960). 린제이 여사는 1895년 면허를 취득한 영국 최초의 여성 치과의사로 시대의 편견을 돌파한 선각자라는 게 권 원장의 설명이다. 런던의 치과대학에서 입학을 거절당한 린제이 여사는 애든버러 치과대학에 기어코 입학을 했고, 1946년에는 여성으로서 최초이자 유일한 영국치과의사협회(BDA) 회장까지 지내게 된다.

권 원장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설명한 공간은 헌터박물관(Hunterian Museum). 외과의사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경이 기증한 수집 물품을 토대로 지어진 박물관은 치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물품이 있는데, 치아에도 관심이 많아 치의학에도 큰 기여를 했다는 게 권 원장의 설명이다. 런던 레스터광장(Leicester square)에는 셰익스피어, 뉴턴, 찰리 채플린 등과 함께 외과의사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의 동상이 서 있기도 하다.  

윈스턴 처칠의 일화 한 토막. 권 원장에 따르면 윈스턴 처칠은 연설 발음이 매우 독특한 정치가였는데, 이를 위해 제작된 틀니는 플레이트가 특이할 정도로 많이 삭제돼 있었다는 것. 까다로웠던 처칠은 틀니가 자신의 연설을 방해하는 걸 원치 않았고, 틀니를 제작하는 치과의사에게 편지와 함께 틀니를 동봉, 자주 조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영국 예방치의학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조지 커닝엄(George Cunningham  1852~1919)의 사례는 좀 더 의미가 깊다. 조지 커닝엄은 턱뼈의 인산괴사(phossy jaw)를 발견함으로써 현재 BRONJ에 영감을 줬으며, 구강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907년 Cambridge Dental Institute를 설립하여 예방치과 진료에 전념했다.

또, 세계 1차 대전 때 안면 손상을 당한 군인의 악안면 재건 수술을 위해 제작된 치과 보철물이 전시돼 있는데, 권 훈 원장은 “이 시기에도 치과의사가 악안면 영역의 전문가였다는 걸 말해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시대 유행했던 일종의 ‘치아 이식술’ 역시 흥미로운 사료다. 당시 존 헌터가 닭의 발톱을 머리 부위에 이식, 이것이 성공하자 치아 역시 이를 적용하는 사례가 유행처럼 번졌다. 어린 아이의 치아를 귀족 부인의 치아에 심는 이식술(Transplantation)이 횡행했는데, 전근대적인 치의학지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에든버러대학의 치의학박물관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라는 게 권 원장의 말이다. 그 중 치과의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가 권 원장의 눈을 끌었다. 이 무기는 손가락 사이에 끼고 주먹을 쥐는 철제 ‘너클’인데, 권 원장은 “이때에도 치과의사가 폭력에 노출돼 스스로를 지키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틴 반 부첼(Martin van Butchell  1735~1814)의 기이한 행적도 소개됐다. 권 원장에 따르면 부첼은 틀니의 명의였으나 흰색 말에 검정 물감을 이용하여 마치 ‘얼룩말’처럼 물들여 타고 다녔으며, 아내가 죽자 이를 미라처리해서 치과 진료실에 보존하기도 했다고 한다.

권 훈 원장은 “일상에 대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치과의사학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치과의사 직업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 중”이라면서 “내년에는 이탈리아를 여행할 예정이며 가까운 미래에 ‘치과의사학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집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