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일. 둘째 딸아이의 7번째 생일! 좋아하는 갈비를 사주기 위해 퇴근을 서둘렀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뭔가 느낌이… 딸들이 내 눈치를 살핀다. 뒤이어 퇴근한 남편도 심상치 않다. 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로비에 강아지 봤어? 엄청 귀엽다. 내가 소시지도 사줬는데 진짜 잘 먹더라.” 아이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하교 길에 강아지가 자기를 쫓아왔고, 동네 아이들 말로는 며칠 전부터 아파트 이곳저곳을 다니는 주인 없는 강아지란다. 마음 약한 큰 아이와 친구들은 상자와 담요로 집을 만들고, 용돈을 모아 소시지를 사 먹였다. 그리고, 털이 수북하게 길어서 ‘털털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털털아~”하고 부르면 꼬리를 살랑거린단다. 털털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 모두가 털털이 주인이 되길 원했지만 엄마들의 철벽방어로 모두 실패했다는… 털털이에 대한 긴 이야기를 끝내고, 털털이가 너무 가엽다고 울먹거리는 아이들. 일단 그 녀석을 만나야 했다. 큰 아이가 “털털아~”하고 큰 소리로 부르니 어디선가 나타난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손을 핥았다. 신기하고 귀여웠다. 길거리 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고약한 냄새와 함께 온몸은 털에 뒤덮여 있고 발톱도 엉망이었다
오후 6시.벚꽃 가득한 교정을 빠져나오는 지금!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아빠는 조금 많은 연세에 3남 2녀 중 막내인 나를 보셨다.‘딸 바보’라는 말이 그 시절에 있었다면, 아마 최고 자리를 차지하셨을 정도로 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다. 막내딸이 태어난 날 너무 기뻐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시며 식사를 대접하신 탓에 잔소리 꽤나 들으셨다 하셨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말을 아끼셨지만 둘이 있을 때에는 속 깊은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으셨다. 덕분에 나도 아빠에게만은 남자친구 얘기를 제외한(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남자친구 얘기를 꺼냈던 날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소소한 일들까지 털어놓는 수다쟁이 막내가 됐다. 막내딸이 태어나던 날 아빠의 소원은 내가 10살이 될 때까지 건강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었단다. 내가 10살이 되던 날 아빠의 소원은 20살까지 나의 곁을 지켜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20살이 됐고 대학생이 된 나에게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 생각지 못하셨다며, 축하의 편지와 함께 헤어스타일링기, 그리고 메이크업 브러쉬를 선물하셨다. 10년 후 나의 결혼식에서는 엄마보다 더 많은 눈물을 보이셨고 서운해 하셨다. 아빠는 편지를 참 많이 써주셨다. 사춘기 딸이
지인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남자건 여자건 40대 진입을 코앞에 둔 지금이 심적으로 제일 심란하고 허무하다던데… 그러고 보니 6개월 남짓 남은 나의 30대! 난 나의 40대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찬란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23살부터 시작된 첫 사회생활. 병원생활과 편입, 대학원으로의 진학 등 나름 부지런한 20대를 보낸듯하다. ‘20대가 치열하지 않으면 30대는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닥치는 대로 열심히, 무언가에 대한 끈임 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20대에는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빠른 걸 좋아했었다. 여행을 간다 치면 당연히 비행기와 고속도로를 이용했고, 출발 전 미리 인터넷을 검색해서 가장 빨리 목적지로 도착할 수 있는 방법, 주변의 맛 집이나 관광명소를 이미 컴퓨터상에서 여행 후 정작 그곳에 도착하면 인터넷의 정보와 동일한지를 비교하는 수준의 여행을 했었다. 운전은 또 어떤가. 빨간색의 정지신호를 기다리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곤 옆길로 돌아서 가곤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식집보다는 패스트푸드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분식집을 자주 찾았고, 약속시간에 늦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직장생활에 있어서도 실수는 두 번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