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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프라스토스의 ‘윤리적 성격론’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성격이 그 사람의 운명(daimōn)’이라고 말한 사람은 헤라클라이토스이다. 신을 의미하는 ‘다이몬’은 ‘한 개인에게 몫을 부여하는 자’를 의미한다. 한 개인의 운명은 자신에게 부여된 다이몬에 의해서 결정되며,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다. 이와는 달리 헤라클레이토스는 한 개인의 운명 혹은 다이몬은 그 자신의 성품과 습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하물며 그런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거나, 정치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그 지위에 따라 성격이 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등장한 인물의 성격을 두고 그 성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고, 어떤 성격은 그 일에 혹은 그 자리에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계 제자로 스승의 학문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학자는 레스보스 섬 출신의 테오프라스토스(Theophastos)였다. 그는 ‘학문에 미친 사람’(scholastikos)으로 불렸다. 원래 이름은 튀르타모스였다고 하는데, ‘말투에 실린 신적인 여운 때문에’(dia to tēs phraseōs thespesion) 아리스토텔레스가 ‘테오프라스토스’로 이름을 바꿔주었다고 한다. 

그의 많은 저작이 소실되었지만, 전해지는 것 중에 《윤리적 성격론》(ēthikoi charaktēres)이란 작품이 있다. 그 제목 자체는 ‘ēthos(성품) 영역에서의 각인’을 의미한다. charaktēr란 말은 charassō(‘각인하다’, ‘새기다’, ‘조각하다’)에서 유래한다. 이 말이 전의되어 개인의 습관이나 성질에 의해 새겨지는 성격과 자신만의 고유한 인격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의 고유한 특징을 ‘캐릭터’(character)라고 부른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윤리적 성격론》에서 30개에 달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성격 유형에 대한 일련의 스케치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첨꾼, 구두쇠, 겁쟁이, 수다쟁이와 같은 부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말과 행태를 상세하게 묘사해서 기술하고 있다.

수다쟁이는 전혀 모르는 사람 옆에 앉아서 자신의 부인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런 다음 지난밤에 보았던 꿈을 자세히 풀어놓으며, 그 다음에는 저녁 식사에서 먹었던 것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anaischuntos)은 지은 빚조차 갚지 않고, 채권자에게 다시 돈을 빌려줄 것을 요구하거나, 푸주한에 들려서는 주인에게 자신이 베풀었던 호혜를 상기시키고는 고기 덩어리를 슬쩍 자신의 장바구니에 던지거나, 하다못해 국 끓여 먹을 뼈다귀를 담고, 그도 못하면 판매대에서 내장을 와락 잡아채서 웃으면서 도망친다는 것이다. 이웃집에 가서는 보리나 밀기울를 빌리고는 빌려준 사람에게 자신의 집 현관까지 옮겨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쁜 평판을 무시하는 뻔뻔한 사람이다.

촌스러운 사람은 회합에 가기 앞서 냄새가 고약한 한 사발의 곡식 혼합물을 마시거나, 마늘 냄새가 향수만큼 달콤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그의 발에 비해 지나치게 큰 신발을 신거나 지나치게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이 작품이 성격 연구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신희극 시대에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도덕적 유형을 성격(charaktēr)과 성품(ēthos)으로 포착하고자 하였다. 단순히 인간의 외형을 통해 성격을 파악하는 관상학과 달리 윤리적 성격을 인간의 말과 행태를 통해 파악하는 성격 분석의 방법이 그리스인들의 예술세계, 인물의 조각, 문학과 드라마 속에서의 인물의 캐락테르에 대한 묘사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재홍 연구원
숭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박사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학 고중세철학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대학 인간학 연구소 전임연구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관동대학교 인문대학 연구교수
전남대학교 사회통합센터 부센터장
현) 정암학당 연구원(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