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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와 황제;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헬레니즘 시기의 회의주의, 쾌락주의로 알려진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등은 공통적으로 철학의 목적으로 ‘삶의 치료’(technebiou)를 지향했다. 철학자들에게 철학함의 동기는 삶의 고통에 대한 긴급성 때문이었다. 정치적 혼란기에 어떻게 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것이 그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 시기에는 ‘철학과 의술의 기예’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철학 학교는 일종의 ‘영혼의 병원’(iatreion tes psuches)이었던 셈이다. 철학자는 영혼의 치료사였다.

에픽테토스는 50~60년경에 태어나 130년경쯤에 죽은 후기 스토아 철학자이다. 에픽테토스(Epiktetos)란 이름은 ‘곁다리로 획득했다’는 의미이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노예인 에픽테토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또 한 명의 스토아 철학자, 아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있다. 인간은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에 불과하다. 그러니 인생이 5막이 아니라 3막이면 어떤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하지만 인생에서는 3막이 연극 전체인 것이다. 언제 끝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이전에는 너의 구성에, 지금은 너의 해체에 책임이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어느 쪽에도 책임이 없다. 그러니 호의를 품고 떠나라. 너를 해고하는 자도 호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명상록>제12권 36)

황제는 로마제국의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지러운 세상을 살았다. 황제로 즉위한 이래로 로마 각지에서는 끝없이 반란이 일어나고, 북쪽으로부터는 이민족들의 침탈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그는 평생을 전쟁터에 매달리다시피 살아야만 했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였지만, 어느 노예의 고독한 죽음처럼, 인생의 황혼기에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면서 기원후 180년경에 지금의 오스트리아 비인(Wien) 근처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로마의 황제가 노예의 말을 가슴에 새긴다는 것이 상상이 가는 일인가? 노예인 에픽테토스가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황제 역시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자유를 원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황제로서의 외적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명예와 권력과 같은 외적인 것에서 얻어지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깊은 내면적 자유이다.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인생을 연극’과 비교하는 이 장면은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에서 그대로 빌려온 것이다. 어쩌면 인생은 연극에 지나지 않고, 인간은 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무대에서 활동하는 배우에 불과한 인간으로서 이점을 깊이 명심하고 세상에 대해 불평, 불만, 노여움을 떨쳐대기보다는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정’(ataraxia; 아타락시아)을 누리면서 세계의 제작자인 자연(physis)의 뜻에 따라 살라는 교훈을 전해준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은 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극작가의 바람에 의해 결정된 그러한 인물인 연극에서의 배우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짧기를 바란다면 그 연극은 짧고, 길기를 바란다면 그 연극은 길다. 만일 그가 너에게 거지의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면, 그 역할조차도 또한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엥케이리디온> 제17장)

우리에게는 세상에 나온 각자의 ‘구실’ 있다. 그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뜻’에 따라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지나친 숙명론(fatalism)일까? 에픽테토스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재홍 연구원
숭실대학교 철학과 대학원·박사 졸업
캐나다 토론토대학 고중세철학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가톨릭대학 인간학 연구소 전임연구원
충북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관동대학교 인문대학 연구교수
전남대학교 사회통합센터 부센터장
현) 정암학당 연구원(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