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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영미야!!

Relay Essay 제2285번째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다. 도대체 영미가 누구이기에 저리 애타게 부를까.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컬링을 더 눈 여겨 보게 된 까닭에는 이 ‘영미’에 대한 호기심도 한 몫 했다. 이 후, 영미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게 되었음에도 관심이 식지 않고 더 흥미를 끌었다. 팀킴(Team Kim)이 영미,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의 친구로 이루어졌다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게으른 관중인 탓에, 실제 선수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들리는 경북 사투리는 외국 선수들이 내뱉는 외국어 사이에서 묘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외국 여행 중에 맛보는 토종 음식이랄까. 하지만, 이것만은 아닐 터다. 형언하기 힘든 강렬한 팀플레이, 신뢰, 유대감 같은 뜨거운 것이 있었다.

2월 25일 폐막식을 끝으로 평창 올림픽 대단원이 막을 내렸다. 넓은 올림픽 경기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다니던 소년, 올림픽하면 나는 이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30년이 지난 지금 소년은 아마 40 전후의 나이가 되었으리라.

특별한 기대 없이 이번 올림픽을 덜컥 만났다. 호불호를 떠나 눈길을 사로잡는 인면조에 웃음을 터트리고 기네스북에 등재된다는 드론 오륜기에 놀라고 정선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민들레 꽃밭에 감동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미디어 아트와 황홀하게 버무린 공연들을 보며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세계적인 클럽 DJ가 등장해 일명 ‘평창 나이트’를 연출한 폐막식 무대를 보면서 해학과 익살이 가득한 한민족임을 실감했다. 참으로  볼거리가 풍성한 잔치였다. 나처럼 까막눈 수준의 관중이 보기에도 녹록치 않은 여건 속에서 최대치를 보여준 올림픽이었다.

컬링. 라인을 잡아주고 돌을 던지고, 슥슥삭삭 빗자루질이 이어진다.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인지라 얼핏 지루해보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이들의 경기를 들여다 보면 터질듯한 긴장감과 강박감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치과의 수행과정처럼. 

prep margin, 25㎛ 유격, emergency profile, biologic width, MB2, apical delta, bracket position, occlusion, guidance 등 우리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수행하는 반복적이고 평범한 임상들 말이다.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전해줄 수는 없기에 학습과 단련으로 일궈내야만 한다.

며칠 전에 술자리에서 선후배들이 1m 앞에서 던져도 임플란트가 제대로 들어간다는 농담과 하악관을 이불처럼 깔고 누워있는 사랑니를 뽑는 방법 등을 이야기 할 때면, 각자의 얼음판과 스위핑이 드러난다. 세익스피어의 말을 조금 변형해서, 우리 삶은 멀리서 보면 평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범하다.

컬링과 더불어 여자팀추월 경기도 단골 화젯거리가 되었다. 경기와 인터뷰 모두 분노를 불러 일으켰지만, 작금의 치과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컬링보다는 팀추월에 닮은 듯 해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유독 추웠던 겨울, 무사히 동계올림픽이 열려 수많은 희로애락을 우리의 가슴 속에 남겼다. 지금도 줄곧 기억에 남는 말은 “2018년 동계 비장애인 올림픽”이라는 아나운서의 말이다. 내가 치과 속 작은 얼음판에서 팀추월이나 매스스타트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세상은 훌쩍 변했다.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비장애인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으로, 강자를 위해 약자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세상에서 동료를 외면하는 불공정함에 모든 이가 공분하는 세상으로 말이다.

두 번의 헌법 소원이 있었다. 전문의문제와 치협회장 선거로. 그 밖에도 내가 속한 세상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지금 우리도 만만치 않은 올림픽을 치르는 중이다. 그것은 매스스타트일까, 팀추월일까, 아니면 컬링일까. 우리에게도 ‘영미’가 필요하다. 알량한 ‘양심’이 아닌 치과인으로서 ‘윤리’가 지켜지고 동업자 의식이 존중되는 치과계를 꿈꾼다. 각자의 얼음판 위에서 자신만의 스위핑을 하면서 외치는 ‘영미’를 꿈꾼다.

올림픽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지금, 미투 운동의 물결이 거세지고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치과 밖 세상은 이렇게 또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윤희삼 베스타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