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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배우기

Relay Essay 제2295번째

10년 넘게 헬스클럽에 미쳐, 헬스클럽이 문을 닫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엿새 꼬박 운동을 하는 지금의 나한테는 전혀 안 어울리는 창피한 사연을 하나 간직하고 있다. 사실 헬스만 하더라도 난 전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공동개원을 했던 2,000년대 초에 동업자이시던 임 원장님에게 끌려 가다시피해서 시작을 하게 됐고 그게 결국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움직이기를 싫어하던 것은 아마도 나의 천성이었으리라… 사실 그 움직이기 싫어하던 천성은 선친 덕분에 얻어 가지게 된 것인 바, 부산에서 선친이 1950년대 말에 대전으로 이사를 오시게 되었고, 살림집으로 고른 건물이 내가 출생했던 반 일본식으로 지어진 2층집이었는데, 갓 대전에 오셨던 선친은 그 지역이 소문난 적선지대임을 전혀 모르고 구입하셨고, 나중에야 이를 아시게 된 선친은 우리 4남매의 외출을 엄격히 금지하시는 것으로 당신의 큰 실수를 만회하려 드셨다.

우리 4 남매는 등·하교를 제외하고는 일요일조차 외출이 금지되어 드넓은(?) 마당에서만 뛰어 놀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나마 이웃과의 토지소송으로 드넓었던 마당마저 빼앗기게 된 후, 활동(?) 영역이 더더욱 축소된 우리는 1층 현관에서 창문만 열면 바로 집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지나가는 군인들에게 추파를 던지던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무수히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내 유·소년기의 추억이다.

결국 집안에서만 갇혀 크던 나는 결국 자타가 공인하는 ‘몸치’로 학교에서도 통하게 되었으며, 내일이면 중학교에 진학하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반 겨울 방학이 되던 75년도, 당시 누구나 다 타던 자전거조차 탈줄 모르는 몇 안 되는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렸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님은 자책하시며 당시로서는 꽤 고급품이던 안장 앞에 주 파이프가 없는 영국제 통기어(그립 쉬프터 혹은 내장형 변속기) 자전거를 한 대 사서 형님께 막내인 내게 자전거를 가르치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게으름뱅이 막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라는 특명 아닌 특명은 운동만능 형님께는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 겨울의 일요일마다 형님은 집밖에 나가기 싫어하는 나를 선화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가 자전거 타는 시범을 보이며 체중이 꽤 나가던 안장에 앉히곤 뒤에서 밀어주며 “계속 페달을 밟아야만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세게 밟으면 속도가 빨라진다”는 꿀 팁을 알려주며 페달을 밟으라고 소리쳐댔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만 같아 페달을 결코 세게 밟지 못했고, 자전거가 쓰러질 것 같으면 먼저 두 다리로 서 버리며 핸들을 손에서 놓아 버리곤 했다. 남들은 한 나절이면 배운다던 자전거가 나에게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고 몸치의 명성 그대로 첫 날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형님의 고행은 그 후로도 몇 주나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선화 초등학교에서 형님의 고함소리를 들어가며 “자전거 못타기”를 고수하던 내게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려보이고 키도 작은 꼬맹이가 어른들이나 탈법한 철근이 둘러쳐진 짐 자전차를 끌고 나와 탑 튜브 사이로 한 쪽 다리를 넣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꼬맹이는 페달을 밟기에 다리가 너무 짧아 자전거는 계속 넘어졌지만, 그래도 꼬맹이는 씩씩하게 페달을 밟아가며 자전거를 넘어뜨렸다. 나는 그때서야 겨우 알았다. 자전거 타기의 첫 번째 요령은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것임을. 이후 나도 꼬맹이처럼 열심히 자전거를 넘어 뜨렸고(?) 결국 나는 그 날 저녁 식사자리에서 막내가 드디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형님의 말로 온 가족의 근심을 덜어 드릴 수 있었다.

그 이후 사십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 내게 자전거를 가르쳤던 형님은 군에서 순직하셨고, 아버님도 작고하셨지만, “실패를 두려워하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는 그 날 어렴풋이 배웠던 교훈은 아직도 내겐 소중하며 내 삶을 이끌어 오고 있다.  

조영진 세창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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