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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치의학 박물관 여행(2)

Relay Essay 제2297번째

<2619호에 이어>
천신만고 끝에 방문한 볼티모어의 Dr. Samuel Harris National Museum of Dentistry에서 머문 두어 시간은 어제의 정신적 및 금전적 충격을 치유하고도 남을 정도로 가치 있는 공간이었다. 이 박물관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면, 먼저 박물관 명칭에 치과의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는 소아치과 분야에서 꽤 유명한 Samuel Harris(1903-2003)가 기증한 백만 달러를 기반으로 하여 1996년 치의학 박물관이 개관되었고, 현재는 스미소니언(Smith- sonian) 재단이 관리하는 박물관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인 메릴랜드 치과대학(구 볼티모어 치과대학) 본관 건물 1층과 2층에 꾸며진 치의학 박물관은 아마도 세계 최고의 치의학 박물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스승이신 이상호 교수님과 10년 전에 치과 박물관에 눈을 뜨게 해준 Samuel Harris의 초상화 앞에서 찍은 사진이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현재의 메릴랜드 치과대학은 치의학 박물관 말고도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있다. 메릴랜드 치과대학의 전신인 볼티모어 치과대학(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이 1840년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으로 개교하였다. 18세기부터 의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을 시작하다가 비로소 정식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독립 교육기관이 탄생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의 일등 공신은 Horace Hayden(1769-1844)과 Chapin Harris(1806-1860)이다. Chapin Harris는 나중에 베인브릿지에 있는 Dr. John Harris Dental Museum에서 언급될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쉽지 않고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후에야 탄생하듯이, 최초의 치과대학도 그랬다. 하이든과 해리스가 처음에는 메릴랜드 의과대학 교육 과정에 치의학 교육시간을 일부 할애해 주기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치과대학 설립을 위한 법령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과 개원중인 치과의사들의 서명을 받아 메릴랜드주 의회에 청원하여 결국 치과대학 설립이 인가되었고, 1840년 최초의 치과대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하이든의 연륜과 경험 그리고 해리스의 열정과 끈기로 최초의 치과대학이 설립되었다. 메릴랜드 치과병원 입구에 서있는 ‘First Dental College' 기념 명판 앞에서 하이든과 해리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였다. 볼티모어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정평이 난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과의사라면 죽기 전에 꼭 가 봐야할 곳이지 않나 싶다.   

볼티모어를 뒤로하고 러스트 벨트의 중심 도시인 디트로이트를 향하는 항공편에 몸을 싣고, 두 번째 목적지인 미시간 치과대학에 있는 Sindecuse Museum of Dentistry으로 향했다. 역시 이곳 박물관 공식 명칭에도 사람의 이름이 있다. 주인공은 1921년 미시간 치과대학을 졸업한 Gordon Sindecuse(1898-1993)이다. Sindecuse는 30년 넘게 개원하는 동안 치의학의 변천사를 직접 체험하면서 치의학 역사를 보존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Sindecuse는 생의 끝자락에서 모교에 100만 달러를 기증하였고, 그 결과 1991년 치의학 박물관이 탄생하였다. 여담이지만 Sindecuse가 부자가 된 이유는 치과가 아닌 주식이었고, 유산을 물려받을 자식도 없었다. 사람은 기억되기 위해 이름을 남겨야 한다고 했는데 Gordon Sindecuse와 Samusel Harris는 이름이 새겨진 치의학 박물관을 후세에 물려주었다.
          
Sindecuse Museum of Dentistry은 방문 전에 예약한 덕택으로 박물관장이자 큐레이터인 Shannon O'Dell의 친절한 설명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박물관의 수장고에 일목요연하게 보관된 유물과 문서를 보면서 학교의 품격과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의 표시로 그녀에게 치과의사 산타클로스 피겨린을 선물하였고, 앞으로도 치의학 박물관에 관한 자료를 서로 공유하기로 약속도 하였다.


치의학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윌로우비 밀러(Willoughby Miller, 1853-1907)의 기념물 두 개를 미시간 치과대학에서 만날 수 있었다. 치과대학 도서관에는 밀러의 흉상이, 치과대학 앞뜰에는 밀러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그의 치의학 업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밀러는 과학적 치의학의 아버지 또는 구강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칭송되고 있다. 학창시절 외웠던 치아우식증 발생의 기전을 설명하는 ‘화학 세균설’을 주장한 치과의사이자 학자이다. 그가 다른 인물보다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흙수저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치의학에서 위인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밀러는 독일 베를린 의과대학 특임 교수직 제안을 거절한 후, 자신의 고향에 있는 미시간 치과대학 학장직을 수용하면서 1907년 미국으로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충수염 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밀러의 업적은 골프계에도 남아있다. 독일에서 체류하는 동안 연구와 임상으로 인하여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취미로 골프를 즐겼다. 취미의 수준을 넘어선 그의 실력을 증명하는 결과물도 나왔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밀러의 골프는 출중하였다.

이번 여행을 끝마치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광주에서 의료선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신 닥터 뉴스마(Nieusma) 선생님이 디트로이트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에서 거주하고 계신다고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번 여행 중에 뵙고 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디트로이트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있어서 다소 위안이 된다. 닥터 뉴스마(Nieusma)에 대해서 좀 더 언급하면, 그의 한국 이름은 유수만이다. 그는 1974년 한국에서도 치과의사 면허증을 취득하였다. 면허번호는 1299이고 ‘유수만’이라는 그의 한국명이 뚜렷하게 면허증에 새겨져 있다. 뉴스마 선생님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자선전 ‘영혼까지 웃게 하라(홍성사, 2008)’를 읽으면서 그분께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뉴스마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만수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권 훈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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