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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의 일관성에 관하여

시론

이제 스물다섯 살이 된 아들과 오랜만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늘 생글거리고 낙관적인 성격인데 다른 때와는 달리 필자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해? 아니면 부드러운‘사람이 되어야 해?”


언제 철이 들려나 해왔는데 엇! 이제 좀 자랐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성의껏 대답한다.


“강해야 할 땐 강하고, 부드러워야 할 땐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단다. 그게 참 어려워. 목적은 일관성을 가지고 강한 의지로 지키고, 목표는 부드럽게 하나하나 달성해 나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하며 어쩌고저쩌고 필자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것들을 권하며 일장 훈시를 하다보니 문득 ‘내 아들이 이제 뭔가 불안하고 방황의 시기가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김광섭(1905~1977)은 ‘성북동 비둘기’로 1970년대의 황량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슬픈 그림으로 읊었다.


그는 ‘자기가 살던 집에 번지가 없어져도 성북동 비둘기는 성북동 사람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라도 전하는 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돌지만,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과 평화를 즐기던 비둘기가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을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며, 그게 그 시대의 그 무슨 결핍과 오류의 소치인지 상술하진 않았지만, 분명 밥 굶지 않고 살게 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허기, ‘상실과 불안과 방황’을 기록했다.


성북동 비둘기가 전해오는 느낌이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최근의 영화 ‘in the Aisles’(2018)에서 이러한 위태로운 비둘기의 심상을 얼핏 느껴볼 수도 있겠지 싶다. 영화 중의 하찮은 부분이지만 철거 현장의 비둘기를 살리려다 해고당했다는 노동자 크리스티안(프란츠 로고스키분)을 통해, 통일 후 더 불안한 동독 주민들의 심리를 전달하는데,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에서와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공동체라는 것이 늘 변화하는 내외요인들로 개개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가치와 의미의 기준들이 현격히 달라지는 시기가 없을 수 없는데, 이러한 시기에 리더십과 펠로우십의 부재까지 겹쳐 세대와 계층과 지역으로 그 기준들이 더 잘게 부서지는 지경에 이르면, 그 공동체는 소속감과 유대감이 없는 ‘무늬만 공동체’인 집단에 이르게 되고, 결국 그 집단의 구성원은 불안감과 상실감에 방황하기 마련이다. 이에 공동체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을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여 찾을 것인가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정서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방황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할 만한 구심적 가치를 ‘정의’라 하고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 조화를 이루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1953~) 교수는 2004년 태풍 ‘찰리’로 쑥대밭이 된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사회현상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추구라고 길게 설명한다. 나름 설득력 있게 저명한 정치, 사회,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담론을 펼치지만, 필자는 샌델 교수의 기발한 시각들에 약간의 재미는 느꼈어도 큰 감동은 받지 못하였다.


오히려 필자는 성북동 비둘기의 김광섭이 말년에 남긴 희망의 글인 ‘일관성에 관하여’라는 메시지가 위태로움과 조우한 공동체에게 필요한 더 큰 감동과 영감과 힘을 불어 넣어줄 수 있다고 느끼고 믿는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경험한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제하는 길은 다름 아닌 방황하지 않고 일관된 길을 가는 것’이라 간단명료하게 설파하는데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에게는 이 시각의 대책에 더 공감이 간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 치과계는 김광섭이 그렸던 채석장 발파음이 울려 퍼지는 소란스러운 성북동 같고, 그 동네 집들 지붕 위에 올라앉은 비둘기들의 모습이 흡사 우리들 같다. 밥은 굶지 않지만, 길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이봐! 이쪽으로 가야 해? 저쪽으로 가야 해? 그대로 있어?” 하며, 상실감과 위기감이 드는지 진지하게 서로 묻기 시작했다.


진지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진지함만으로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는다. 나아가 그 진지한 마음에 사랑을 더하여 마음을 열고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절대 경솔히 방황하지 말고 언젠가 우리 스스로 내팽개친 본질을 다시 찾아 김광섭이 얘기한 ‘일관성’에 담아 품고 함께 가는 길에서 ‘우리의 산을 되찾아 사랑과 평화의 사상을 낳는 비둘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