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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 3대, 강산 7번 바뀌어도 밀양 지킨다

고 김찬구 원장 1947년 밀양 개원, 30년 간 나병환자 진료
아들 김병곤·손녀 김지희 원장도 대이어 치의 인술 ‘화제’
진료실 책상에 붙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평생 가슴에”

 

잔잔히 흐르는 밀양강 옆, 치과에 들어온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화기롭다. “옛날 할아버지한테 한 거 수십 년째 잘 쓰고 있다.”


바로 이곳, 남산 밀양치과의 역사는 1947년에 시작됐다. 머리가 비상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고 김찬구 원장(1920~1997년)은 1940년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치과에서 5년간 일하며 치의학을 배웠다. 당시 그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 업무 뿐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까지 도맡으면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귀국 후 그는 한지치과의사면허를 발급 받고 본격적인 진료에 나선다. 1947년 당시 밀양읍에서 개원한 그는 비슷한 시기 밀양 외곽지역 ‘마흘리’에 위치한 나병 환자촌에서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고, 이는 30년 이상이나 이어졌다.


나병환자 진료에 대해 가족들은 “당시 일반 환자들이 나병환자와 같이 진료 보는 것을 상당히 꺼려했다”며 “아버지는 특정 날을 정해 치과를 쉬고 나병환자들만 오게 해 진료를 보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나병 환자 진료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던 가족들을 향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진료를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고 한다.


특히 가족들은 “아버지는 항상 진료실 책상 유리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붙여 놓고 진료했다”며 “돈 욕심 없이 남이 어려운 것이 있으면 도와주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다.

 


#73년 전, 밀양 남산치과 시작하다
김찬구 원장의 성향은 아들 김병곤 원장을 거쳐 손녀 김지희 원장에게 전해지며 ‘집안 내력’이 됐다. 김병곤 원장 또한 욕심이 없기로 유명하다.


“치아를 왜 이리 두껍게 제작하느냐”는 치과기공소 직원의 핀잔에도 김병곤 원장은 “내가 좀 두껍게 해주면 오래 잘 견디고 좋지, 뭐 돈 벌려고 혈안이 되고 그러나. 난 돈 못 벌어도 좋다”며 허허 웃곤 했다.


이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김지희 원장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지만 부담도 된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할아버지는 그냥 맥가이버였다”며 “진료를 굉장히 잘 하셔서 수십 년 전 크라운을 받은 환자가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환자를 보면 지금 내가 크라운을 해주는 환자가 수십 년 후에 찾아올지 생각하게 된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만큼의 진료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부담감을 성장을 위한 동력으로 전환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면서도 “할아버지처럼 환자가 20년 후에 오더라도 치료받은 부분에 대해 문제가 없게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밀양은 그녀와 김병곤 원장, 김찬구 원장 모두에게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다. 그녀는 “73년간 밀양에서 치과를 운영하다보니 환자가 대부분 내 친구나 친구의 부모 또는 지인”이라며 “진부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정말 가족을 치료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