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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피아노

Relay Essay 제2403번째

유년 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우연히 피아노 학원을 방문한 것이 나의 피아노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와 80년대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클래식 음악, 특히 피아노 교육이 대중화되었다. 1980년대는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생겨났던 시절이었다.


피아노는 클래식 악기 중 음량이 큰 편이고, 방음에 대한 개념이 약했던 시절이었기에 피아노 학원 근처는 피아노 선율이 크게 울려 퍼졌다.

 

특히, 오가다 들은 쇼팽의 피아노 선율은 참 아름다웠다. 은연중 피아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는 클래식 음악과 첫 조우를 했다.

 

집에서도 한 번씩 연습하라고 할아버지가 사 주신 흰색 업라이트 피아노는 나와 우리 가족의 구심점이었다.

 

거실 한 켠에 자리 잡은 피아노의 덩치가 크기도 했지만, 가족을 한자리에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생과 옆에 나란히 앉아서 젓가락 행진곡을 신나게 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피아노곡의 변주도 시도해보았고, 작곡도 해 본 기억이 난다.


운 좋게도 학창시절 내내 학급의 반주자로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늘 음악시간 전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반주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또, 피아노는 정교한 선율을 오른손과 왼손이 따로, 또 같이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데, 마치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다양했던 감정을 피아노가 받아주고, 성숙시켜 주었다고 본다.

 

삶은 도전과 인내의 연속이다. 80년대 피아노 교육은 짜여진 순서의 교본들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바이엘, 하농, 체르니 교본 순으로 진행되며, 일정 수준이 되어야 바흐, 쇼팽으로 나가는 식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바흐는 다른 바로크 음악파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아노가 개량되기 전이어서, 바흐는 피아노에 대해 건반이 너무 무겁고 음역이 약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지금 피아노 교본에 있는 대부분의 바흐의 곡은 다른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을 편곡한 것이다.


피아노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고 적용된 것이라, 바흐의 곡들이 배우는 사람의 마음에 덜 와 닿을 수 있다. 재미가 없었다. 나는 아름다운 쇼팽의 곡들을 배우기 전에 바흐를 배워 내야만 하는 것이 굉장히 곤혹스러웠다. 모든 일이 그렇듯,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인내해야 했다.

 

삶은 개인이 보낸 시간의 농도에 응답한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은 평생 피아노와 함께했다. 피아노를 사랑했던 그는 피아노가 가진 울림과 소리를 깊게 이해하였고, 이 악기의 표현 능력의 가능성에 파고들었다. 그는 큰 틀에서는 낭만주의 형식을 따르지만, 연습곡, 녹턴, 마주르카, 스케르초, 폴로네이즈, 발라드, 왈츠 등 어느 장르 할 것 없이 종래에는 없었던 뛰어난 독창성을 나타내었다.


폴란드 농민들의 춤곡에 깊이 동화했던 쇼팽은 폴로네이즈를 점진적으로 개발시켜 나갔는데, 그 정점은 ‘영웅’(Polonaise No.6 In A Flat Major Op.53 ‘Heroic’)이 아닐까 한다. 강하고 웅장하지만, 서사적이고 리드미컬한 시의 형식을 녹여내었기에, 곡에 가슴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쇼팽의 손을 거치며, 아름다운 빛을 발하였다.

 

삶은 변화무쌍하다. 쇼팽의 왈츠에는 그의 삶이 녹아있다. 미묘한 악센트와 음색의 변화로 그는 섬세하고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화려한 대왈츠’(Waltz No.1 In E Flat Major Op.18 ‘Grande Valse Brillante’)는 쇼팽의 왈츠 교본에 가장 먼저 나오는 곡으로 꿈과 환상을 대담하게 그리는 듯하지만, 정교하고 치밀하다.


내가 인고의 끝에 바흐의 산을 넘고, 다다른 곡이다. 재미있게도, 바흐를 배우기 전에 피아노 명곡집에서 이미 쇼팽 곡을 쳤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강아지 왈츠’(Waltz No.6 In D Flat Major Op.64-1 ‘Minute Waltz’) 였다. 삶의 보너스 같은 곡이다. 전반적으로 쇼팽은 살롱 음악으로서의 왈츠에 시적 정취를 부여했는데, Waltz in A minor, Op. 34 No. 2에서 잘 드러난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쇼팽은 수백 년 된 피아노곡을 통해 고단한 기다림 속에 있는 나에게 축적된 시간이 헛되지 않고 곧 기쁨도 있을 것이라는 답을 주는 듯하다.


앞으로 나의 삶이 깊어질수록, 그의 음악은 지금과는 또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피아노와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 앞으로 어떤 느낌으로 쇼팽의 피아노 곡들이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