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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건 참 중요한 일상이다

황성연 칼럼

이제 개업한 지도 15년 정도 되는데, 지내보니 젊은 여직원들이 점심을 참 부실하게 먹는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도시락을 싸 오기도 하고 밖에서 사먹기도 하면서 점심을 해결하는 게 보통인데, 다이어트 한다고, 입맛이 없다고, 먹는 게 귀찮다고, 점심을 안 먹거나 대충 해결하고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기력이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굶거나 편의점 과자 한 봉지로 점심을 때우는 모습은 너무 낯설고 어색했다. 

 

도저히 왜 잘 안 먹는지 이해가 안 되어 어떻게든 먹여보잔 생각에, 근처 반찬가게에서 1국 3찬을 배달하고 밥은 각자 알아서 싸 오게 하여 점심 먹이기를 시도한다. 밥을 싸 오거나 햇반 준비만 하면 되다 보니 이제 굶는 친구들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덕분에 ‘오늘은 뭐 먹지?’란 아주 원초적이고 해답 찾기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전라도 음식에 길들여진 나에게 배달 반찬은 뭔가 낯설다. 경상도 음식 같기도 하고, 강원도 음식 같기도 하고. 뭔가 입맛에 안 맞는다. 거기에 반찬 조합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매운 반찬만 쭉 나온다든지, 김치는 없고 단 음식만 준비되고, 어떤 날은 나물만 오고, 어른들 입맛에 맞는 반찬만 준비되기도 하고 먹다 보니 계속 아쉬움이 생긴다. 근처에 반찬 배달이 되는 가게가 또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계속 이용하면서 약간의 불만이 쌓인다. 분명 밖에 나가서 사 먹거나 배달시켜 먹을 때 보단 좋은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역시 먹는 건 참 중요한 일상이다.

 

그러다 한식 뷔페가 근처에 생겼다. 1국 8찬 정도에 고기반찬 하나 정도 준비되는데 옳다구나 하고 이걸로 점심을 해결하자고 결정한다. 여기 사장님이 전라도 분인지 입맛에 맞아서 너무 좋다. 반찬 가짓수가 늘어나니 그나마 만족하는 반찬 하나 정도는 있어서 다행이다. 병원 내에서 후다닥 점심 먹고 남은 시간 쉬는 데 익숙했던 직원들이라, 식당 찾아가서 먹고 오는 걸 처음엔 꺼리더니 훨씬 더 괜찮은 식단에 만족도가 높아진다.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는 친구가 있긴 하지만, 반찬 배달 때보다 확실히 모두가 잘 먹는다. 물론 나도 더 잘 먹게 된다. 직원들이 잘 먹어서 살찐다고 푸념이지만, 잘 먹으니 좋다. 잘 먹여야 뿌듯해지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개인적으로 나물반찬을 좋아한다. 하루는 들깨국물에 머윗대가 나왔는데, 이걸 아는 직원들이 몇 없다. 들깻국도 별로 안 좋아하고 머윗대 식감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어릴 적 제철에 꼭 올라오던 반찬이라 몇 개 집어먹는데,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릴 적 익숙함에 행복해진다. 생각해보니 들깨국물에 머윗대는 시골 내려가서 어머니가 차려준 상에서나 봤지 이렇게 밖에서는 처음인 듯하다. 고구마순에 꼬들빼기 김치 등은 종종 먹어본 거 같은데 들깨국물에 머윗대가 주는 낯설음에 나도 나이 먹었구나 싶다. 덕분에 즐겨 먹지 않던 들깨국물에 머윗대를 참 많이 먹었다.

 

그러다 얼마 후,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다. 최근 간단한 수술을 받았는데 아들 걱정된다고 한 짐 싸 들고 멀리 서울까지 오셨다. 아들 걱정에 챙겨온 최상급 쇠고기 덩어리보다 이쯤 먹던 여름 김치에 깍두기가 너무 반갑다. 엄마 맛이다. 한데 생각도 안 했던 들깨국물에 머윗대를 같이 가져오셨다. 머위가 끝물에 뻐실 시기인데 풀 깎다가 아직 어린 순이 있길래 아들 생각나서 무쳐오셨단다. 아들이 안 좋아하는 반찬인 줄 알면서도 제철 나물이라고 챙기셨다. 얼마 전 먹었던 거에 비하면 역시 엄마 맛이 최고다.

 

누군가 잘 먹으니 기뻐하고, 내가 잘 먹어 행복하고, 옛 추억 돋는 음식에 생각이 많아진다. 참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역시 먹는 건 참 소중한 일상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