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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첫 ‘시론’과 21년 후의 자화상

시론

2000년 1월 1일자 ‘치의신보’ 제 11면에 게재된 본인의 시론 ‘새 천년의 지평에서’를 회고한다. “세기의 기원이 비록 종교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을 뿐이고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를 바 없다 할지라도 또 한 세기는 오늘부터 새로이 열렸다.....이토록 과학화되고 정보화된 미래의 모습에서 우리는 홀연히 피어나는 새로운 진리와 이성의 실체를 본다.....개개인의 도덕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진실한 사랑과 행복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며 희망과 열정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진정한 인본주의 시대를 여는 일, 즉 ‘테크노 휴머니즘’의 실현이야 말로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기대와 우려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새 천년의 여명은 밝았다.” 그 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만 21년의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갔다.


새로운 세기에 걸었던 기대와 신비로움은 예기치 못했던 온갖 사회적 소용돌이의 굴레에 갇히고 크고 작은 우려들만 더욱 부각되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지난날의 인간사는 언제 어디서든 성실하게 노력하면 누구나 성취를 누릴 수 있는 구도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열심히 씨 뿌리고 가꾸어도 ‘거두어 나누리라’가 아니라 ‘나누어 거두리라’가 정답으로 돌아온다. 다시 21년이 지난 후, 힘이나 수를 앞세워 결실을 공유하려는 부류와 땀방울로 가꾸어낸 이들 중 누가 더 옳았는지 되짚어볼 일이다.


한편 날이 다르게 진보를 거듭해온 과학과 의학은 온갖 병마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수많은 가축들은 구제역이나 돼지열병, 조류독감과 같은 전염성 질환으로 ‘살 처분’이란 미명하에 산채로 묻히고 들짐승들은 마구 학살당하고 있다.


그리고 동물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종간장벽(種間障壁)을 넘어온 병원성 바이러스로 인해 만물의 영장인 인류마저도 생사의 기로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현실이다.


감염자 26,628명에 사망자 11,020명으로 집계되어 치사율이 무려 50%에 달하던 ‘에볼라바이러스’의 공포가 채 사라지기도 전인 2003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사망률 9.6%를 기록한 SARS, 즉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SARS-CoV)’가 출현했다.


이후 2015년에도 코로나바이러스 질환중 하나인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CoV)’가 중동지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지면서 무려 36%에 이르는 사망률을 보였다.


그리고 2019년 12월부터 중국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COVID-19; SARS-CoV-2)’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지금까지 감염자가 8천만 명을 웃돌고 치사율 2%로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우리나라에도 코로나19가 만연하면서 경제활동이 위축됨에 따라 긴급 구호자금만 수 십 조원이나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로 인한 영업제한과 휴업사태, 재택근무가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손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코로나 초기에 외국으로부터의 유입억제나 방역단계를 한층 더 높였더라면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 싶기도 하지만 손익을 저울질하며 시간만 끌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형국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준비예산이라고 책정된 1700억 원 중 겨우 850억 원 만이 집행 가능했다. 그러니 면역효과나 부작용 가능성보다 우선 값싸고 국내 위탁생산이 가능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딱 꽂혔다.


이 백신은 ‘RNA백신’이 아니라 ‘바이럴백터’ 방식이다. RNA백신은 RNA전달체(mRNA; 전령RNA)를 이용하는 기술이 핵심인데 그 기술이 없는 제약회사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사용한다. 이는 아데노바이러스 안에 ‘코로나DNA’ 형질의 단백질을 집어넣는 형태다. 그러므로 인체가 면역반응을 일으킬 때 ‘코로나 항체’ 뿐만 아니라 ‘아데노바이러스 항체’도 함께 생기는 ‘복합항체’ 발현으로 예방율이 62%에 불과하고 2중 내성이 생겨 반복투여도 어렵다. 또한 아데노바이러스는 여러 부작용과 함께 뇌종양이나 결막염, 아데노바이러스성 감기 등도 유발할 수 있다. 반면 중국백신 ‘시노팜’은 실활된 코로나바이러스를 직접 주입하므로 염증성사이토카인이 유도될 뿐만 아니라 항체형성비율과 면역지속기간도 의문시된다.


순수한 RNA전달체(mRNA) 방식의 백신을 생산하는 곳은 ‘모더나’와 ‘화이자-바이오앤테크’ 두 군데다. mRNA백신은 RNA단백질을 전달체로 이용하므로 시상하부에서 RNA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식, 효과적인 항체를 만들어내 예방율이 95%에 이르지만 비교적 고가인데다 극저온 냉동운송이 필요해 국내 도입가격이나 반입 날짜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언제쯤이나 정치적 풍파와 역병이 잦아지고 보람이 넘치는 인본주의 시대가 열릴까! 연전에 돌아가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은 “전기가 들어와 세상이 더 어두워졌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21년 전의 내 시론 ‘새천년의 지평에서’가 틀렸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