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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을 느끼는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기원을 찾아서!

특별기고

2021년 신축년 새 아침이 밝았다. 사람에게 일 년에 한 번 자신만의 생일이 있듯이, 어떤 단체든 기념일이 있다. 특히 단체명에 ‘대한민국(大韓民國)’이 포함된다면 창립기념일에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가치가 담겨야 할 것이다. 창립기원은 단체에 속한 회원들에게 이정표 역할과, 더 나아가 현재와 미래의 회원들에게 ‘등대’가 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지금부터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협회) 생일인 협회 창립기원의 뿌리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대한민국치과의사들의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2020년 10월 30일:‘협회 창립일에 대한 공청회’가 2009년 이후 두 번째로 열려 1921년, 1925년 측 주장과 협회기원 토론이 있었다
·2010년 12월 9일: 협회 설립일에 관한 의견합치사항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는 해방 후인 1945년 12월 9일 설립되었으며, 한인치과의사들이 1925년 4월 15일 이후 창립한 ‘한성치과의사회’의 정신을 계승한다. 이 땅에 최초로 설립된 전국적인 치과의사단체는 1921년 10월 2일 일본인치과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한 ‘조선치과의사회’로 한인의 참여는 1930년 이후로 이루어졌고, 1944년 10월 2일 광복 이전에 소멸되었다. 창립기념일은 12월 9일이다 (또는 10월 2일, 6월 9일로 한다)”

*1921년, 1945년 창립한 단체이름이 ‘조선치과의사회’로 같으니 연도로 구분.

 

·2010년: 59차 대의원총회에 ‘협회 창립일 정립의 건’이 상정 되나 ‘A.G.D. 경과조치’ 논의로 시간이 부족하여 수임사항 처리되어 무산되었다.
·2009년 9월: 협회 창립기원 1차 공청회에 세 개의 안(1921년, 1925년, 1945년)을 토론했으나 하나의 주장을 선택하지 못했다.
·2009년 4월: 58차 대의원총회에 ‘협회 창립기념일 변경’에 대한 안건 상정되나, ‘대한치과의사학회’ 공론이 일치되어 않아 안건이 철회되었다.
·2005년: 54차 대의원총회에서 ‘창립 기념일 변경’이 안건 상정되나 변석두 대의원이 현행(1921년)대로 둘 것을 강력 주장하여 논의되지 못했다.


1981년: 30차 대의원총회(경주)에서 “개인, 단체, 국가 등 모든 곳에 생일이 있으나 치협은 아직 생일이 없기 때문에 이를 제정하여 매년 기념행사를 갖자”는 주장에 총회의장은 “그러면 치협의 창립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안건에 대해서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란다. 예, 반대하시는 분 손들어 주시기 바란다.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만장일치로 보인다”는 결정을 하였고 당시 협회 집행부에 날짜를 의뢰하기로 결의하였다. 당시 협회 집행부는 “어떤 기관이나 단체든 긴 역사를 갖는 것이 좋다. 대외적으로도 역사가 긴 것이 좋고 회원들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며 1921년으로 기원과 생일을 정했기 때문에 이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2년 3월 협회 홈페이지에 보건사회부 법인설립 허가로 안종서 초대회장이 소개되었다
·1946년 조선치계(朝鮮齒界) 창간호: 광복 후 일본인들은 썰물처럼 일본으로 소리 없이 도망쳤고, 1946년 한국인에 의해 발간된 조선치계에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치과의사들의 언급들을 보자.


서병서(법인설립 전 제3,4대 치협 총무이사)는 “일본제국주의의 압박과 멸시”
박명진(법인설립 전 2대 치협회장)은 “과거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악독한 압박과 질고”
문기옥(법인설립 전 1대 치협 부위원장)은 “왜 제국주의의 강압적 식민정책”
박용덕(법인설립 전 1대 치협 평의원)은 “일본 침략주의적 구속”
이유경(협회 8대 회장)은 “그 지독한 일본인, 일본 사람들 차별 아래에...”
한택동은 “폭악간인 착취적인 일본 팟쇼”


·1945년 12월 9일 ‘조선치과의사회’ : 광복 이후 한국인치과의사들 주도로 전국적으로 창립.
이는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를 부활, 계승하였고 창립임원 22명 중 위원장/부위원장 포함 14명(64%, 표1 참조)이 한성치과의사회 회원이었다. 조선치과의사회 초대회장 안종서는 “한성치과의사회는 차차 커져서 한국인 만으로서의 치과의사회로 태평양전쟁 초까지 운영되다가 일시 중단되고 8.15 후에 다시 결성되더니, 이제는 다시 발전되어서 이른바 오늘 날의 대한치과의사회라는 법정단체가 됐다”고 하여 오늘날의 대한치과의사협회 시원을 1945년 넘어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에 두고 있다. (박명진도 비슷한 주장)

 

 

·1942년 한성, 경성치과의사회 강제통합 총회: 식순. 국민의례(궁성요배, 기미가요제창, 신사참배), 축사(조선군 군의부장), 만세삼창(츠루오 하쿠부), 폐회사(우리타 교시로) 그런데, 당시 한성치과의사회 강제합병에 참석한 정보라, 이유경, 함석태, 박명진, 안종서 등 다섯 분 선학(先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1925년 4월 15일 이후 ‘한성치과의사회’ : 경성치과의학교 1회 졸업생이 배출되자 함석태, 안종서, 김용진, 최영식, 박준영, 조동흠, 김연권 등 7명의 한국인들은 일본인치과의사로 구성된 조선치과의사회에 대항하기 위해 한성치과의사회를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애국계몽운동의 성격을 가진 모임이었다. 초대회장은 함석태, 총무는 안종서였고 설립 시 매주 회합을 가지며 임상적 토론 및 상호간의 지식을 교환하는 정도였으나, 점차 회원이 증가하고 회(會)의 체계가 확립되자 구강위생 계몽, 학술연구, 회원복리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만주국 개국 10주년인 1942년, 일본총독부 방침에 따라 내선일체(內鮮一體) 명목으로 일본인치과의사회 조직인 경성치과의사회에 강제합병 되었다. 합병 이후, 한국인치과의사들의 독자적인 활동은 원천봉쇄 되었다.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 경성에 개원중인 일본인치과의사들이 조선총독부로부터 행정적인 도움을 얻고자 부산과 평양에서 개원중인 일본인치과의사들과 창립한 단체다. 창립총회는 10월 2일 장곡천정(하세가와마치長谷川町)은행집회소에서 23명의 일본인치과의사들이 참석하여 개최되었고, 초대회장은 경성치과의사회 회장 나라자키 도오요오(楢崎東陽)가 선출되었다. 조선치과의사회가 전국적 규모의 첫 번째 치과의사 단체라고 하지만 경성, 부산과 평양 등 일부 지역 일본인치과의사들이 만든 모임이다. 1921년 창립회원에 한국인 참여기록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으며 1930년에 이르러 한국인 두 명이 처음 등장하였다.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 역대회장 명단>
초대 회장 : 나라자끼 도오요오  (1921).
2대 회장 : 이이즈카 토오루  (1922-24).
3대 회장 : 도내가와 세이지로오  (1924-26).
4대 회장 : 소토 케이조  (1926-28).
5대 회장 : 도내가와 세이지로오  (1928-34).
6대 회장 : 오오자와 기세이  (1934-45).
7대 회장: 니기라 다쓰미  (1945).


이외에도 세부적인 대한민국 치의학 역사가 있지만, 3개의 치과의사 단체를 기준으로 큰 줄기로만 대한민국 치과의사단체 역사의 뿌리를 살펴보았다.


치과의사 동료 선·후배 여러분!
제가 언급한 역사적 사실을 읽었다면 이제 역사를 역순으로 읽어 보기 바랍니다. 협회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조금은 더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반면, 궁금한 점도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홈페이지에 협회기원은 1952년 안종서 회장인데, 왜 1925년 한국인치과의사들이 만든 한성치과의사회를 외면하고 1921년 일본인들의 단체인 조선치과의사회로 기원으로 삼고 있을까? ‘역사는 오래된 것이 좋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지만 4년 차이 뿐인데 왜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만든 단체로 기원을 바꾸지 않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 총회 모습이 담긴 몇 장의 사진들이 전해져 오지만 지금은 그 때 행사를 기념하지 않는다. 다만 치욕으로 기억 할 뿐이다. 현재 협회창립기원인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는 ‘기념의 대상’이 아닌 ‘기억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 기념의 대상은 따로 있다! 바로 한국인치과의사들이 설립한 한성치과의사회다.


필자는 1921년 일본인들의 조선치과의사회 보다, ‘1925년 한국인들의 한성치과의사회’를 협회 창립기원이 되기를 주장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치과의사협회는 몇몇 한국인들이 속한 단체가 아닌 한국인들이 만든 정통성이 있는 단체여야 한다. 막 밝아온 새해가 정체성에 문제 있는 ‘창립 100주년’의 해가 아닌,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뜻깊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올해 4월 24일 예정된 제70차 대의원총회에서 ‘협회 창립기원’ 결정 이후로, 잠정 중단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 동안 세 차례의 총회에서 논의가 있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논의가 중단된 협회 창립기원을 이번에는 제대로 결정했으면 한다.


100주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회원들의 기원이 담겨야 하고,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전국 211명 대의원들께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있고, 현재와 미래의 회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올바른 ‘협회 창립기원’을 결정하기 바란다! 아울러 회원들께서도 대한민국 치과의사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치과의사에게 국경은 없지만
치과의사협회는 국경이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KDA)는
‘국격(國格)’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