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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세상의 길과 내가 가는 길

종|교|칼|럼| 삶

세상의 길과 내가 가는 길

 

출가를 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부분의 경우는 일정 기간 동안 글자와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거의 모든 매체에 관심을 둘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선 수행을 위주로 하는 도량에 출가했다면 전념해야할 것이 오직 자기의 본성을 보고자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러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간에서 살 때 관심을 가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상할 정도로 더이상의 관심이 가져지지 않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대상에 대해 촉수를 세우고 판단하고 잣대질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공부거리로 삼다 보니, 생각을 키워나가고 궁리를 통해 일을 해결하려는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내 수행의 과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동안은 글자나 영상을 통한 것들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소란하게 할 뿐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출가자로서 사는 일이 내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시점이 되면 글자들도 좀더 편안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도 읽거나 보는 거리들의 쟝르가 제한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것은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통히 읽혀지지가 않으며 읽을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특히 현란한 언어유희를 동반하는 작품일수록 더욱 부담스러워지니 되도록이면 짧고 간결하며 핵심을 잘 설파할 수 있는 책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가벼운 순례기나 여행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런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쓴 여행기는 그야말로 장소의 설명과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 그치게 하지만 같은 장소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살아온 연륜과 삶에 대한 통찰이 문학적인 향기를 지닌 채 묘사 되었을 때는 정말 그 장소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생겨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가보지도 않았지만 친밀해지고 나로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삶의 부분들을 심연의 바닥에서 끌어올려주는 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차이를 느끼고부터 나는 어디를 간 여행기인가 보다는 누가 간 여행기냐에 따라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이루었나라는 것보다는 어떤 삶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드러나지 않지만 세월을 안고 살아가다보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지고 느껴지는 그런 것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변하지 않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어떤 선지식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평생동안 어리석음에 빠져 있고 탐욕과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에서 ‘집착’이 생긴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재물의 부귀 변천에 몸을 맡기면서도 한편으론 탐낼 것도 즐길 것도 없는 현상계의 텅 빔을 항상 의식한다. ’ 우리가 결단코 걸어가야만 하는 길은 결국 그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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