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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한 줄 모르는 데서 오는 괴로움

종|교|칼|럼|



혜원 스님
<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空한 줄 모르는 데서 오는 괴로움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덕분인지 마주 보이는 앞산의 나무들에 새 초록의 잎이 무성해져 산이 훌쩍 높아진 듯이 보입니다. 갖가지 연초록의 향연은 감탄과 찬탄을 아무리 해도 모자랄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것에 너무 취하는 마음이 보여 ‘모든 것 참으로 감사하구나.’ 하는 마음으로 돌려놓으며 담백한 눈으로 자연이 주는 기쁨을 다시 음미하였습니다.


어제는 선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분이 찾아와서 따로 상담을 요청하기에 만났습니다. 그 분은 성당을 오래 다녔으며 근래에 불교를 만나 불교가 주는 또다른 폭넓음에 매료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 갑자기 나타난 그이가 하는 말은 ‘너무 힘들었어요.’ 였습니다. 얘기인 즉슨 조카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살던 시집 식구들이 열 몇 분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분들 치성을 하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다만 몸이 힘들었던 게 아니라 그 시집 식구들이 자기와 견해가 너무 달라서 자기를 아주 이상하게 보는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요즘 돈을 좀 잘 버는데 시집 식구들을 위해 아낌없이 큰 규모의 돈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걸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그이들의 자세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우울증이 다 오더라는 거였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말은 안 먹히고 자기를 전혀 인정해 주지 않고 자기와 상의 없이 나가는 시집 식구들을 위한 돈이 괴로움의 원인이었습니다.


그 분은 세 가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을 해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돈이 없는데 더 내놓아야 하는 일들이 자꾸 생겨서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줄 돈이 있으니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걸 모르니 첫번째는 그걸 모르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시집 식구가 있다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그것을 과민하게 받아들여서 괴로움을 스스로 재생산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모든 이들은 나와 다른 생각과 환경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왜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하는 것은 피아노를 보고 왜 바이올린 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아무도 내가 이 재산을 이루는 데 얼마나 함께 고생하며 공헌했는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하는 괴로움 때문에 우울증까지 왔다고 합니다. 원래 우리 모두는 돈의 주인이 아닙니다. 돈은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이리 흘러 들어왔다 저리 흘러가는 것이 마땅한 것이고 우리는 잠시 그 돈의 관리인이 될 뿐인 것입니다. 그런 돈을 벌 때는 벌기 위해서 애쓴 만큼 집착이 커지고 그런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갈 뿐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자연은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은 채 다만 꽃 피고 다만 열매 맺을 뿐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고 키웁니다. 꽉 차있지만 공(空)한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입니다. 우리도 본래 공(空)한 것인 줄 알아야 ‘자기’라는 잘못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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